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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시배달 - 박형준의 '저곳'

저곳 / 박형준

공중(空中)이란 말
참 좋지요
중심이 비어서
새들이
꽉 찬
저곳

그대와 그 안에서
방을 들이고
아이를 낳고
냄새를 피웠으면

공중(空中)이라는 말

뼛속이 비어서
하늘 끝가지
날아가는
새떼

시·낭송 / 박형준
출전 / 박형준 시집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창작과비평사(2002)

"박형준의 『저곳』을 배달하며"
'공중(空中)'이란 말, 한자의 형상을 오래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비어 있는 중심입니다. 비어 있으면서 꽉 차 있습니다. '그대'하고는 아직 지지며 볶는 사랑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그대'와 화자 사이는 아직 '공(空)'일 따름입니다. 그러하기에 채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아이를 낳고, 냄새를 피우는 것은 욕망과 관련되는 일이지만 그 장소를 공중으로 택했으므로 욕망의 기름기가 번들거리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사랑에 치여 사는 우리는 언제쯤 뼛속이 비어 하늘 끝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요?

문학집배원 안도현. 2007.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