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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쿨하게 가자!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차별금지법안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10월 22일 이 법안에 관한 공고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學歷),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규정한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과 아울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

그런데 입법예고된 법안의 내용 중 비차별 대상으로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성적 지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 7개 항목이 삭제되었다. 보수적 기독교계와 재계의 입장을 수용한 결과라는 비판이 많다. 보수적 기독교계는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과 '성적 지향'을 반대했을 것이고, 나머지는 재계가 반대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는 모든 차별의 근거들을 금지하는 데 예외는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안의 제정을 기본적으로 환영하지만, 법무부의 법률안은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할 수밖에 없다.

한편 나는 '가족 형태 및 가족상황'과 '성적 지향'이 비차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사실에서 혈연 중심적인 '정상가족'의 틀을 고수하고 나아가 더욱 강화하겠다는 국가의 의도를 읽는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성명서는 통계청 자료를 인용하여 부모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은 전체 가족 형태의 50%에 불과하다고 지적하였다. 한부모 가족을 비롯해 동거가족, 별거가족, 동성애 파트너쉽, 비혼 등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개인간 결합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가족과 개인간 결합은 법과 제도로부터 공평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받거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2005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30대 대기업과 계열사의 신입사원 채용에서 가족관계 정보를 요구한 곳이 75%나 되었다. 이혼한 사람은 '무언가 하자 있는 사람'으로 취급 당하기 일쑤(특히 여성들에게 더 하다!)다. 또 여전히 '결손가족'을 문제시하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적령기'를 넘긴 비혼자도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성적 지향'이 삭제된 배경에도 '정상가족'의 틀을 고수하려는 국가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동성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에 실재해온 현상이다. 서양의 경우 12세기 무렵부터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애를 금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17세기까지만 해도 '세련된 악'으로 이해될 뿐,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되지는 않았다.

18세기 많은 국가들이 민족주의 담론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동성애는 정치적인 이유로 강력한 법적 규제를 받게 되었다. 동성애는 민족국가의 든든한 기반이 되는 가족의 상과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민족국가가 원하는 가족은 경제 능력이 있는 남편, 가족을 잘 돌보는 아내, 넉넉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양육되는 자녀들로 구성된 '홈 스위트 홈'이었다. 동성애는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권을 얻기는커녕 제도적으로 배제당했다.

19세기에는 일부 정신의학자들을 중심으로 동성애를 '전기충격' 같은 요법으로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몰아가기도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 68혁명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사회의 영역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동성애에 대한 '우회적 범죄화' 내지는 비범죄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최소한 동성애를 명시적으로 범죄화하는 법적 규제는 폐지되거나 상당히 약화되었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동성애를 인권으로써 보장하려는 제도를 갖추고 있거나 노력 중이다. 동성애라는 행위 자체가 반사회적이고 위험하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성애의 접근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동성애에 대한 합리적인 지식을 조금이라고 가지고 있다면, 동성애를 이유로 취업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차별이라는 사실에 쉽게 동의한다. 동성애자들이 차별받고 있고, 그러한 차별은 불합리하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동성애를 합법적인 결혼제도 안으로 수용하는 것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인들이 합의 하에 동성애라는 성행위를 하는 것에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그들이 합법적인 가족의 틀 안에 들어오는 것은 너그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성애가 합법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함으로써 임금에서 가족수당, 의료보험 적용, 연금, 상속 등에서 다양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정상가족'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와 몇몇 국가들은 동성애 커플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파트너쉽 등록'이나 '시민결합'과 같은 제도들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도 동성애 커플들에게 가족구성의 권리를 보장했다기보다는 이성애 가족들이 누리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준 것에 그치고 있다. 본질적으로 동성애 커플에게 결혼과 가족구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표적으로 '파트너쉽 등록' 제도의 경우 자녀 양육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2000년 네덜란드는 동성애 커플들에게 자녀 입양권을 인정하고, 시민혼인제도를 개방함으로써 동성애 커플들이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02년 스웨덴과 영국도 동성애 커플에게 입양권을 보장하였다.

이제 한국도 가족형태와 성적 취향에 대해서 좀 쿨하게 대할 때가 되었다.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개인간 결합은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 간의 문제이다. 범죄도 아니고 부도덕도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또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지 가족 구성원으로써의 의무도 아니고, 국민의 의무는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는 데 왜 문제인가! 세상의 온갖 부조리에는 침묵하면서 남의 사랑행위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의식구조는 이제 안드로메다에 관광보낼 때가 되었다.

차별금지법, '쿨' 하게 가자!


며칠 전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국무위원들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한다.

이 법은 동성애를 정상으로 공인함으로써 동성애를 반대하는 절대다수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며, 동성애 확산을 주장함으로써 에이즈가 확산되며, 사회와 가정은 붕괴됩니다. 또한 저출산등으로 인하여 생산력과 경제력이 축소됩니다.


전국의 논술학원은 이 문장을 학생들에게 심화학습 시킬 필요가 있다. 논리의 비약과 오류가 무엇인지 이보다 더 정확히 보여줄 수는 없다.

보너스 하나!

<공개질의>
동성애 허용 관련 법안이 국무위원회에 상정될 경우 국무위원님께서는 어떠한 입장을 견지할 것입니까?
1. 동성애 허용을 반대 할 것이다.             2. 동성애 허용을 찬성 할 것이다.


정말 섬뜩한 '공개질의'다. 국무위원님들 식은 땀 좀 흘리겠다.
썰렁한 공개질의를 보니까 저들이 왜 동성애 반대에 혈안이 돼 있는지 알 것 같다. 저들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모 아니면 도인 것이다!



*동성애 규제 역사와 관련된 내용은 이소영의 논문 "동성애 혼인에 대한 법적 개입의 딜레마와 가족이데올로기 해체"(「법철학연구」 제10권 제1호 pp.375-404, 2007)를 참조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