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코>- 의료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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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코>- 의료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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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가 이번에는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체제를 들쑤셔 놓고 있다.
새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에서 마이클 무어는 미국의 의료보험정책이 자국민들의 건강을 내팽개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에는 전국민 의료보험체제라는 게 없다. 한국에서 의무가입인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체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자신의 소득에 따라서 사기업의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물론 빈곤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제도가 있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상 별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에서도 특유의 유머가 넘치는 풍자를 보여준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쉽고 명료하게 드러내준다. 그의 전작들을 두루 봐왔던 탓일까? <식코>에서는 약간의 식상함이 느껴졌다. 미국의 의료보험체제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미국의 의료보험 사기업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는 질환들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A로 시작하는 단어들부터 쭉 보여준다. 영화 <스타워즈>의 인트로를 패러디해서.
'Long time ago....' 하는 자막이 화면 아래로부터 나와서 저 멀리 우주로 사라져가는 그 장면 말이다.
수많은 질환들이 자막으로 나왔다가 사라지는데, 중간에 끊긴다. 너무 많아서 시간관계상 다 보여줄 수 없단다.
<식코>에서 유일하게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이클 무어의 유머는 이 장면 뿐이다.

마이클 무어는 사기업의 의료보험 조차 적용받을 능력이 없는 4천5백만명(전체 인구의 15%)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떠안아야 하고, 황당한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살이 많이 쪄서 안되고, 너무 말라서 거부당한다.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었는데 하나 붙이는 데 6만 달러, 다른 하나는 1만2천 달러. 결국 6만 달러짜리 손가락은 포기해야 한 사람도 있다.

우석훈과 박권일의 책 <88만원 세대>에는 미국의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사회주의적인 핀란드에서부터 자유를 모토로 삼은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에 비해 가장 낮은 사회보장체계를 가지고 있다. 영국이 단 1파운드로 치아교정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든데 비해 미국은 1백 파운드로도 제대로 치아교정을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차이는 '기업'에 대한 이해의 차이인데, 미국의 68세대는 유럽과는 달리 기업에 사회적 재분배를 만드는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를 하였다. '사적 보장'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1970년대 체제는 좀 특수하다. 기업에 재분배 기능을 부여하면서 의료보험과 퇴직금을 기업을 통해 재분배하도록 만들었는데, 이 시스템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기업의 근로자로 소속되어 있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독특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약자에 대한 재분배는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지만, 특이점은 기업에 소속되어야만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70년대의 미국 시스템은 노동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 방식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직장에 대한 소외'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고, 이런 정상적인 직장에 들어갈 수 없는 유색인종에게는 매우 가혹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pp.166-167)


마이클 무어는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로 날아간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돈을 낸 적이 없다는 이야기에 놀란다. 병원비를 내기는커녕 집까지 가는 데 필요한 교통비를 현금으로 챙겨가는 환자들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

미국에서 버림받은 미국인들을 데리고 쿠바로 넘어간다. 동네마다 약국과 의원이 있다. 미국에서 엄청나게 비싼 약이 쿠바 약국에서는 거의 공짜다. 모든 약품의 가격이 똑같다. 한 미국인은 평생 복용해야 할 약을 쿠바에서 사갔으면 좋겠다며 울먹거린다.

예전에 쿠바의 선진적인 의료체제에 대해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시장에 인간의 얼굴은 없다.
시장의 순기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시장에 넘겨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의료다. 아픈 사람이 차별없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 윤리다.
의료의 공공성이 해체되고, 시장에 빼앗기는 순간 다수 인민들의 불행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식코>는 국가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소수 사기업들의 이윤증식을 위해 자국의 인민들을 불행으로 내모는 국가에게 과연 존재이유가 있을까?
인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파괴하면서 더러운 이윤을 챙기고 있는 사기업들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국가가 필요한 이유다.
만약 당신의 국가가 그렇지 않다면,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식코>는 그래서 선동적인 영화다.(마이클 무어 자신이 늘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