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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의 시대

<광주드림> 4월 16일자 게재.

올 것이 왔다. 전남대 도서관 출입구에 ‘스마트 카드’ 인식기가 설치되었다. 카드 하나로 도서관 출입, 열람실 좌석관리, 도서대출을 한방에 해결한단다. 오! ‘스마트’하다. 이제 전남대 도서관 출입도 관리되는 세상이 왔다.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이 어쩌다 도서관 출입마저 관리(!)당하게 되었을까? 듣자하니 역시 자리다툼 때문이다. 대학 도서관이 취업준비생들로 넘쳐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재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나 취업은 절체절명의 미션. 신입생 때부터 취업준비에 몰두하는 것이 88만원세대의 생존지침인 세상이다. 취업준비생들은 취업경쟁에서 뛰어들기 전에 먼저 도서관 좌석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수요량은 급증하는데 공급량은 제자리 걸음. 경쟁은 치열해진다.

재학생들의 시험기간이 되면 좌석 경쟁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좌석쟁탈전이 벌어진다. 경쟁이 심해지면 온갖 편법과 탈법이 판치는 법.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좌석을 선점하는 불공정 행위가 흔히 벌어진다.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의 지성과 윤리는 순식간에 실종된다.

보다 못한 대학본부가 나선다. 내세운 대책이 도서관 출입 및 좌석 관리 시스템이다. 좌석이 부족하니 이용 자격을 가리겠다는 것. 좌석의 주인임을 증명하도록 발권 시스템을 도입했다.

여하간 이제 전남대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 없이 권리 없다. 바야흐로 증명의 시대다.

어쩌면 졸업생이나 일반인들은 궁색한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좌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이 가장 먼저 배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졸업생도 그리 안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재학생들은 등록금을 내고 있다는 이유로 증명의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만 이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대학에 뭔가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게다가 기여의 기준은 돈!

그런데 전남대는 국립대학이다. 등록금 1천만원 시대에도 비교적 낮은 등록금을 낼 수 있는 것은 국립대학이기 때문이다. 전남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납세자로서 전남대에 기여한다. 그래, 돈으로! 납세 영수증이라도 들고 와서 증명해야 하나?

도서관 좌석 부족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방법은 도서관 증축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전남대 캠퍼스에서 끊임없이 공사가 이뤄지는 것을 목격해왔다. 녹지를 없애고 곳곳에 거대한 건물을 지어 올렸고, 반듯하게 차도를 만들었다. 와, 돈 많네! 지금도 전남대는 공사중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학생들이 낸 등록금과 국민의 세금이 쓰인다. 그런데 왜 도서관은 아직도 그대로인가?

전남대 총장님이 증명하실 차례다. 도서관 증축에 무관심한 이유가 총장 선거에서 학생들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시기 바란다.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 경쟁력을 길러주기 위해 도서관 좌석경쟁을 이용한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주시기 바란다. 국립대학의 체면을 지키는 총장의 자격이 있는지 증명해주시기 바란다.

조원종 시민기자 communi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