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모에는 말이 필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2002년부터 해서 그의 재임기간 내내 나는 '대통령 노무현'을 비판하는 편에 섰다.
내가 비판했던 것은 '대통령 노무현'이었지, '인간 노무현'은 아니었다. 물론 한 사람을 두고 딱 부러지게 구분해서 인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대개 그의 정치행위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고 비판했다는 뜻이다.
그가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타인의 죽음 앞에 고개 숙이고 명복을 비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도리이다.

# 1
그런데 변희재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 세금 1푼도 쓰지 마라"고 주장한다. "끝까지 국민에게 봉사하는 의무를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우를 박탈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폭의 보스' 어쩌고 하는 변희재의 문장에서는 할말을 잃는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 앞에서 국민세금을 걱정하고 있는 그의 차가운 정치행위에 머리가 아찔하다.

# 2
'인간적이고 소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조명'되고 있다. '노간지'의 사진들을 인터넷 어딜 가든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그것이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방법이라고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좀 이상한 기류를 느낀다. 다소 과장되고 부풀려진 내용이 있다고 보기 때문만은 아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빠'들로부터 느꼈던 묘한 이분법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은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대통령이었고, 이명박은 흠 잡지 않을 곳이 없는 '악의 축'이라는 위험한 이분법. 오해 없길 바란다. 나도 누구못지 않게 이명박의 모든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추모와 숭배는 분명히 다르다. 무릇 추모에는 말이 필요 없고, 숭배에는 온갖 언설이 달라붙어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법이다.
지금은 말없이 추모할 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2002년 대선 당시 모 IT업체 토론게시판에서 한창 싸울 때 올린 글이다. 지금 읽어보니 단순무식했다는 생각에 민망하긴 하다. ㅋ

노무현 비판을 자유케 하라 2002-12-13 13:09:35 / 조원종

노무현 개인이 민주당의 정체성과 일치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분명 노무현은 민주당의 썩어빠진 정체성과는 차별성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노무현은 민주당 대통령후보다. 이미 김대중정권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이어받겠다고 공언했다. 이건 5년간의 실정과 부패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불리함을 피하지 않고 정면대결하는 당당함이 노무현의 또다른 매력포인트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실정과 부패에 대한 비판을 노무현은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지지자들은 ‘왜 노무현을 싫어하느냐’(싫어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일 뿐이다)는 투정을 부릴 게 아니라 노무현 비판의 내용과 논리에 대해 틀렸다면 지적하고 반론하고 그러면 되는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서 노무현을 비판하는 것을 이회창의 그것(비판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과 똑같은 것으로 깎아내리는 비신사적인 행동은 이제 그만 두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노무현과 민주당이 다른 건 인정하지만 노무현이 당선되면 민주당은 집권여당이 되고 노무현은 민주당의 인력과 자원으로 정치를 하게 된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물론 노무현은 민주당을 개혁하려고 할 것이다. 나도 믿는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 개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노무현과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중단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진정 노무현을 아낀다면, 진심으로 노무현과 민주당이 다르다고 주장하신다면 비판을 비난하지 마라. 비판을 두려워 하지 마라.

그리고 최근의 노무현의 움직임을 보면 애초 그에 대해 가졌던 신뢰가 조금씩 흔들린다. 정치인 노무현에게 가졌던 나의 신뢰는 건전한 보수정치인으로서의 상식과 인간적인 진실됨 등에 기반한 것이었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된 경쟁자를 만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은 꾸준히 애초의 개혁성에서 벗어나 우향우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뭐 김영삼 찾아가고, 재벌2세와 손잡은 것은 지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협상’의 결과라고 넘어가자.
심각한 것은 노무현은 계속해서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실수를 해명하고 번복하는 차원이 아니다. 노무현 개인이든 민주당이든 그 정체성을 규정짓는 정책과 노선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어제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이 정책공조합의에 서명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란 게 노무현의 개혁성이 심각하게 후퇴했음을 보여준다. 노무현은 지금까지 이회창의 냉전수구적 대북관을 비판하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오로지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어제 합의 내용을 보면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 수용, 핵 반입 시도 포기, 대량살상무기 생산 금지 관련 국제협약 가입’ 등 사실상 북한을 심각하게 압박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이런 주장은 국제법까지 무시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입장과 가깝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부추기는 이회창을 비판했던 노무현이 ‘핵개발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정부차원의 대북현금 지원이 중단이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했다. ‘현금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종전 주장이 후퇴한 것이다.

또 노무현의 재벌개혁 정책의 핵심이었던 ‘출자총액제 제한 유지’와 ‘상속 증여세의 완전포괄과세 도입’은 ‘출자총액제 단계적 완화’와 ‘유형별 포괄주의’로 크게 수정되었다.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 재벌2세와 손잡은 한계를 보이는 것인가.
노무현의 개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대북정책과 재벌개혁 부분이 이회창의 정책과 차별성이 없을 정도로 크게 후퇴했다.
이것도 ‘현실정치인’으로서 '협상'하는 것인가?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입 다물고 있으면 노무현이 혼자 알아서 개혁해줄까?
그건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이 한 것이지 노무현 후보가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인가?
지금은 이회창집권 저지가 절대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에 지금 노무현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납할 수 없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무현의 그 명분이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노무현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펼치게 될 정책이 이회창과 한나라당에 가까워지고 있다.
노무현에 대한 애정도 좋지만 냉철하게 볼 것은 보자.
노무현 지지자들은 노무현을 제자리로 원위치시켜야 한다.
그게 진정한 지지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믿는다.
노무현과 권영길, 노무현 지지자와 민주노동당 지지자 모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