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경

#1 나는 김대중을 찍지 않았다
1997년 12월 18일, 한국의 15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날이다. 그 때 나는 대한민국 육군 일등병 신세.
군인들은 선거날 전에 부재자 투표를 한다. 어느날 오후 중대 막사에는 행정병과 경계근무병 등 최소한의 인원만이 남아 있었다. 다들 부재자 투표하러 버스 타고 떠났다.
나는 행정병도 아니었고, 경계근무도 없었는데 그 버스에 타지 못했다. 선거권이 없었다.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기 때문. 생애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었던 날, 나는 그렇게 고참 하나 없는 내무반에서 홀로 왕고처럼 삐댔다.
그런데 만약 내가 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김대중을 찍었을까? 아니다. 나는 국민승리21이라는 좀 뜨악한 이름을 달고 나온 권영길 후보에게 내 생애 첫 투표를 했을 것이다. 왜냐, 진보정당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1996년 하반기부터 굳혀 오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괜찮은 정치인이었고, 나름 '준비된 대통령'이기도 했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이 유의미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나의 투표와는 전혀 무관하게 김대중은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진보진영이나 운동권의 다수들조차 김대중의 당선에 주목하고 기뻐했다. 나는 혼자서 권영길의 30만표 득표(득표율1.2%)를 곱씹으며 '이게 되는 장사인가?'하며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민에 빠졌고, 고참의 험악한 욕설마저 귀에 잘 안 들어오는 시기를 보냈다.

#2 "김대중 정권 타도 투쟁에 동의합니까?"
1999년, 복학 후 나는 단대 학생회에 내 발로 들어갔다. 당시 학생회는 맥이 빠질대로 빠져 있었다. 다 떠나서 일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특별한 사명감을 갖거나, 학생운동을 새롭게 해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던 것은 아니다. 그냥 미안해서다. 예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한테 미안하니까 뭐라도 해야지 않겠나 싶어서 무작정 들어간 거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거대한 벽에 부닥쳤다.
어느 날 단대 학생회실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학생회 간부였던 한 후배가 오더니 대뜸 물었다.

"형은 김대중 정권 타도 투쟁에 동의하요?"

아, 씨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유분수지... 이건 또 뭔 소리냐... 속으로 그랬다.
겉으로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위기를 모면했다.
"타도할 수는 있냐? 타도 말고 퇴진은 안되겠냐?"

그 후배는 '윗선'에서 내려온 문건을 보고 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에게 물었던 거다. 그 후배에게는 잘못 없다. 그 녀석은 너무도 천진난만한 죄밖에 없었다.
결국 변한 건 없다는 사실보다도 변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확신에 심란해 하며 내 발로 학생회를 나왔다.
*이랬던 그들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대우를 격상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도 난다.

#3 존경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그의 사후에서야 존경하게 되었다. 그의 민주화운동이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여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까 정치인 김대중이나 대통령 김대중이 아닌, 인간 김대중을 존경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최근 공개된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았기 때문이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85세의 노인이 일기에 적어놓은 것 치고는 너무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건강도 편치 않고, 시국도 뒤숭숭한 상태에서도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저렇게 느낄 수 있다는 거.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나 깨가 쏟아진다는 신혼 때도 아니고, 여든을 넘긴 나이에 느끼는 아내와의 생활이 '최상'이라니! 인간 김대중은, 남자 김대중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도 이 일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어떠한 추모글이나 동영상을 보아도 울컥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일기를 보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 몸과 마음이 늙었음이 실감날 때, 아내와 내가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것이 기쁘게 되기를.
그리고 내 옆에 있을 누군가에게 이 말을 꼭 해줄 수 있기를.

"요즘 당신과 나 사이는 우리가 결혼한 이래 최상이야. 당신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도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