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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똥 싸는 사람은 없다

1600년 경까지 유럽에서 여성의 해산 자세는 이른바 '미개사회'의 자세와 흡사했는데, 서 있는 자세, 앉은 자세, 무릎을 꿇는 자세 등이었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기 이탈리아(16세기)의 가구전시장에서는, 가운데 아기를 낳는 구멍이 뚫린 '분만의자'를 볼 수 있었다. 에도시대, 더구나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일본의 전통적인 분만자세는 좌산이 많았으며, 그 중에는 남편이 뒤에서 안아주고 도와주는 지방도 있었다.
유럽 근세의 '출산혁명'에 의해서 출산은 질병의 일종으로 치부되어 분만자세는 '자리에 눕는 것'이 일반화되고, 17세기 이후의 근대 서구 의학에서는 '앙아위'(바로 눕는 자세)가 표준이 되었다. 좌산을 돕는 사람은 여성 산파였는데, 경험적으로 피임이나 약초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어서 존경받고 있었다. 그런데 중세 말기부터 근세에 걸쳐, 마녀재판에서 산파들도 마녀라는 의혹을 받고 많이 원죄형사 당하게 되었다.
'여성의료인 탄압'에 의해서 분만시 주도권은 여성 산파에서 남성 의사로 옮겨가고, 남성 의사들은 17세기 후반경부터 '앙아위의 분만'을 원칙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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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아위는 임산부가 분만하기 어려운 자세다. 임산부의 분만 용이성보다 의사의 조작 용이성이 우선시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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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아위 보급의 계기는 '태양왕' 루이 14세(1643~1715년 재위)의 엿보기 취미(애인의 출산)였다. 당시의 프랑스 궁정에서도 분만의자는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분만의자로는 커텐 뒤의 국왕이 분만 장면을 엿볼 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의 중 한 사람(남성)이 국왕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높은 테이블 위에 양쪽 무릎을 세운 상태로 천장을 쳐다보고 눕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라면 '엿보기'가 쉽다. 소아과 의사 멘델슨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앙아위가 분만체위로 택해지면서, 임산부는 출산에 대한 자기관리 능력을 완전히 빼앗기고, 출산은 더 없이 어렵고 괴로운 체험이 되었다. 앙아위는 의사에게 편리할 뿐, 인정할 만한 올바른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앙아위는 임산부를 고생시키는 최악의 분만체위이며, 만일 이보다 더 해산을 고통스럽게 하는 체위를 고안한다고 한다면, 양다리를 한 데 묶어서 천장에다 거꾸로 매다는 것밖에는 생각이 안난다."
1930년대의 연구에서도 7종류의 분만체위 중 배에 힘을 주기 가장 쉬운 것이 좌위라는 것, 즉 쭈그리고 앉는 자세가 골반을 분만에 알맞은 모양으로 바꾼다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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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과 분만에는 운동으로서의 공통점도 있는데, 앙아위로 배변하는 사람은 없다.

-토다 기요시 <환경학과 평화학> 중-


논문 쓸 때 참고문헌으로 읽으면서 발췌해두었던 부분이다.
 
근대는 우리에게 좀더 안락하고 쾌적하며 위생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연생태적 자기관리능력을 상실케 하기도 했다. 산부인과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 농사짓는 임산부들은 밭에서 쪼그려 앉아 김을 매다가 출산을 하기도 했다는데. 근대의 시선으로 보면 얼마나 무지하고 비위생적이며 야만적인가! 그래도 당대에 출산은 그런 거였다. 현대의 출산은 온갖 기계장치와 약물, 그리고 의사권력에 임산부와 태아의 모든 것을 맡겨둠으로써 '안심'한다. 근대로부터 임신과 출산은 병리학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고, 관리자의 시선으로 해석되고 처방되었다.
요즘에는 수중분만, 그네분만과 같은 임산부와 태아 중심의 출산방식이 많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임산부는 출산의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의학적 관리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근대가 심어준 불안과 공포의 힘은 매우 막강한 것이니까. 의사의 권위있는 처방에 따를 수밖에. 불안을 덜기 위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기백만원의 돈을 지불하여 의학의 힘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알 필요가 별로 없었던 시절이기도 할 것이다)에는 생기지 않았던 불안이, 근대적 의학의 발달로 많은 것을 확인하고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불안은 태어났다.
출산에 대한 고통과 불안의 이미지는 근대의 이름으로 증폭되고 발명된 것이다.
고미숙의 지적을 되새긴다.

"근대는 시각을 특권화한다. 어둠 속에 있는 것들, 시각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한편 불안해 하고, 한편 봉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