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11월

오늘 11월 13일.
나에게는 특별한 '11월 13일'의 기억이 있다.
1996년 11월 13일.
먼저 영원한 노동자의 벗 전태일의 기일이었다. 또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이 날 입시한파 때문에 꽤나 추웠다.
그리고 내가 1심 선고공판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전태일의 기일에 선고를 받는다는 묘한 기분으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벌벌 떨며 호송버스에 올랐다. 법정에서 재판장은 판결이유를 설명하고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재판장의 입에서는 '그 집행을 *년간 유예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멍 때렸다. 당연히 집에 가는 줄 알았고, 변호사도 그랬고, 같은 감방 아저씨들도 '원종이 좋겠네. 집에 가고' 그랬는데.
아침에 감방을 나오면서 아저씨들이 시키는대로 내가 쓰던 칫솔을 두동강 내고 쓰레기통에 확 던져버리고 나왔는데.(선고공판이 있는 날 재소자들은 '오늘 집에 간다'는 의미로 자신의 칫솔을 부러뜨리는 '의식'을 치루고 감방을 나선다.)
재판장은 집행유예라는 말 대신에 2주 안에 항소하라는 말만 했다.
멍 때리고 있는 나를 교도관이 팔을 잡고 들어가자고 했다. 그 때 방청석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모든 광경이 포커스 아웃 되면서 시야가 흐려졌다. 이거 정말 영화 같았다.
씨바 찍힌거다. (실형을 선고받는 것을 전문용어로 '찍혔다'고 한다. ㅋ)
여하간 덕분에 안양교도소로 이감되고, 살인마 '막가파'와 역시 살인마 전두환과 같은 교도소에서 살게 되었다.

1996년 11월 13일은 나에게 역사적인 날이다.
2009년 11월 13일은 '13일의 금요일'이고. ㅋ

그리고 11월 1일은 유재하의 기일이고, 동시에 김현식의 기일이다. 아! 이건 정말 영화다 영화.
유재하와 김현식은 술친구로 잘 알려져 있고,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잠시나마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유재하는 '가리워진 길'과 '그대 내 품에' 두 곡을 김현식에게 주기도 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유재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나오게 되고,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3년 후 같은 날 김현식은 유재하의 뒤를 따른다. 유재하와 김현식의 슬픔, 사랑의 상처, 고독, 외로움... 위대한 뮤지션의 고단하고 고단한 삶이 잉태한 아름다운 노래들은 외로움과 사랑의 상처에 온몸을 떨고 있는 이들에게 더없는 벗으로 남았다.

11월은 원래 슬픈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