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4시간

1999년. '캐스트러시'라고 나름 최초의 대학생 인터넷방송국에서 웹진 콘텐츠를 제작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기획한 아이템 중의 하나가 공간에 대한 문화비평이었다. 그 때 문화과학 그룹의 이론이 유행처럼 회자되던 시절이라. 여하간 나는 편의점에 주목했다. 편의점의 24시간 영업. 이론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무식했던 나의 눈에 포착된 건 바로 24시간 문화였다. 말 그대로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24시간 영업하는.
그 때 내 눈에는 이게 참 문제가 많아 보였다. 왜 우리가 잠 잘 시간에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할까? 이게 좋은거냐? 단순했지만, 나름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그 때 쓴 글이 있는데 예전에 사망하신 하드 디스크와 함께 먼 길 떠나셨다.

시내에 나가서 커피 마시다가 깜놀하였다. 햄버거 파는 패스트푸드점이 24시간 영업을 하더니, 이제 커피숍마저 24시간 영업을 한다. 우리가 갑자기 24시간 원하면 언제든지 커피를 마셔야 할 정도로 커피애호가들이 된 거냐?
노동자에서 소비자로 변신한 사람들이 24시간 영업의 혜택(?)을 맘껏 누릴 때, 잠 잘 시간에 노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죽어난다. 딴건 몰라도 대형마트의 24시간 영업은 법률로 금지시켜야 한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중소상인들 생계를 위협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2교대 3교대를 돌아야 하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수면, 가족, 친구, 연애, 취미, 건강을 박탈당한다. 웬만하면 대형마트는 보이콧 하고 살자.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곳은 병원, 경찰, 군대, 소방서 정도면 된다. 삶의 질이 높다는 나라들을 봐라. 24시간 영업은커녕 야간 개장이나 휴일 개장도 법률로 제한한다. 또 그만큼 수요가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영업시간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는다. 프랑스는 사르코지가 대통령 먹고 나서 유통업체의 영업시간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는 한다만.
한국 사회가 아무리 물질적 소비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곳이라고 해도, 적당히 하고 잠 좀 자자. 돈 버는 것도 피곤한 사회에서 돈 쓰는 것마저 피곤하게 해야 쓰겄냐 이말이다. 학습시간, 노동시간, 소비시간 이런 건 좀 OECD 하위권에 머물러 보자. 왜 우리는 이딴 것만 1등 하는 거냐. 장담컨대, 24시간 문화는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게 아니라 더 빡세게 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