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 같이 가난해질까요?

한국 언론기업의 대부분은 이른바 대기업 노동자의 '고임금'을 문제 삼아왔다. 물론 한국의 정부도 '고임금'을 문제시하는 데 더 하면 더 했지 부족함이 없었다.
심지어 대기업 노동자의 '고임금'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어렵다고 생떼를 쓰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고임금'이 아니라 저임금이 문제다.
'고임금'이라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일정한 이익을 자본이 가져간 이후에 노동자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일 뿐이다.
노동력의 생산활동에 대한 완전한 대가가 아니라는 거다.
저임금을 문제 삼으면 고임금을 지향할 수 있지만,
고임금을 문제 삼으면 저임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경비 노동자가 받는 고임금이 문제라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할 줄 모르는 언론기업들의 종업원인 기자들의 고임금과 정규직도 큰 문제다. 기자들도 임금 동결하고, 아웃소싱 도입하라. 볼만 하겠네. 조선일보에서 1년간 파견근무하고, 다음 해엔 한겨레와 계약하고... 임금은 기사 글자수에 따라 지급된다. 기사에 오타 나면 바로 계약해지인 거 알지? 물론 계약해지는 문자메시지로 통보된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좋은 글 썼다. (강양구 기자는 한국에서 몇 안되는 훌륭한 기자 중 한 명이다.)
일독을 권함.

"경비원이 1억원 연봉 받으면 왜 안 되는가?"
[기자의 눈] '금융공기업 고액임금' 논란을 보고
등록일자 : 2006년 10 월 04 일 (수) 17 : 24   
 
  한 방송사에서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액 임금을 선정적으로 문제 삼고 나서면서 벌어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웬만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과 비교하더라도 훨씬 높은 이들 금융기관의 경비원이나 운전노동자의 임금이 누리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결국 한국은행은 모든 경비, 운전 업무를 아웃소싱(outsourcing)하기로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다들 저임금 비정규직이 되길 바라는가?
 
  일부 공기업 노동자의 고액 임금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데에다 임금까지 높은 공기업 노동자의 상황은 '불안정 노동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노동자·서민의 입장에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부러움 반, 비아냥 반의 별칭까지 그들에게 붙었겠는가?
 
  그러나 최근 일부 언론이 주도하고 상당수 누리꾼들이 가세한 '공기업 노동자 때리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당장 한국은행의 경비원과 운전노동자가 수천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것이 배 아플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높은 임금을 문제 삼는 것이 대다수 노동자·서민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 한국은행이 내놓은 대응은 경비, 운전 업무를 100% 아웃소싱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아웃소싱이지 사실상 저임금의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하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이미 8월 말 기준으로 경비, 운전 노동자의 50% 정도를 아웃소싱하고 있는 상태다.

  '공기업 노동자 때리기'는 결국 또 다른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만 양산하는 결과로 귀결될 뿐이다. 상대적으로 고용과 임금의 안정을 누리던 노동자를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로 끌어내리는 것이 당장은 마음이 후련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바닥을 향한 경주'를 더욱 가속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공기업 수익의 사회적 환수다
 
  여론의 질타를 받은 또 다른 공기업 산업은행은 행장 급여의 일부를 반납해 소외계층 돕기에 사용하고, 재임 중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이런 대응은 '공기업 노동자 때리기'가 당초 방향을 잘못 잡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예다.

  지금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공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아니라 바로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그렇게 방만한 경영을 주도한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진에 대한 높은 보상이다. 이번에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도 그 초점은 노동자에 대한 임금이 아니라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상태에 있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세금을 종자돈 삼아 설립 운영돼 온 각종 공기업의 수익을 사회에 어떤 식으로 환원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사회적 토론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해당 공기업의 설립취지를 유지하면서 수익을 국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해당 공기업을 관할하는 정책당국이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공기업에서 경영진으로부터 일선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돈 잔치'를 해 온 배경에는 그들의 높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익을 사회로 환원할 시스템이 없다 보니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 유지하거나 간간이 소외계층을 돕는다며 생색을 내는 것뿐이다. 금융 공기업의 경우 수익으로 기금을 조성해 가난한 서민을 대상으로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줘 자활의 기반을 조성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대출)'를 실행하는 것과 같은 아이디어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금융기관의 순익 중 일부를 지역사회와 금융 소외층에 재투자하는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금융 공기업이 그 앞에 서고 있음은 물론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사회연대은행이 기업체·금융기관 등으로부터 기금을 받아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추진하고 있지만 금융 공기업의 참여는 아직까지 지극히 제한적일 뿐이다. 오죽하면 일선에서 방글라데시만도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경비원의 노동도 존중받아야 한다
 
  이번 논란을 통해 짚어봐야 할 또 다른 문제는 경비, 운전 업무 등에 대한 경시 풍조다. 최근 1주기를 맞은 정운영 씨는 생전에 노동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대학교수의 노동과 그 대학 경비원의 노동이 다르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노동이야말로 모든 가치의 척도라는 명제를 주장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학문적 목표였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새삼 마르크스 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을 들먹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정 노동을 경시하는 사회풍토가 아쉬울 뿐이다. 은행원의 노동이 존중받는 것만큼 경비원의 노동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은행원과 마찬가지로 경비원 역시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은행의 경비 업무가 아웃소싱되면 100만 원 정도의 저임금과 고용 불안을 감수하는 노동자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일부 아웃소싱된 한국은행 경비원의 처우는 200만~300만 원이라고 한다. 100% 아웃소싱되면 그 처우는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중앙은행의 경비 업무가 허술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고가 가져올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그 경비원이 한 가정의 가장, 누군가의 아버지일 수 있음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자. 이번 금융 공기업 노동자의 고액 임금은 한 방송사의 방송으로 확대됐다. 국민의 세금과 시청료 등을 종자돈으로 해서 운영돼 온 방송사 기자, PD의 높은 임금에는 다들 왜 그리 관대한지 모르겠다. 그들이 제 역할을 못해서 발생한 사회적 폐해는 금융 공기업 노동자의 그것과 비교할 바가 못 되는데 말이다.

강양구/기자
ⓒ 2001-2006 PRESSian.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