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윤용현 故양회성 故이상림 故한대성 故이성수 故김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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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윤용현 故양회성 故이상림 故한대성 故이성수 故김남훈

지난 1월 9일, 용산참사로 희생된 철거민 5명의 영결식에 참석차 서울에 다녀왔다. 다른 일이 나름 정리가 되어 이제서야 글을 적는다.

9일 아침 새벽밥을 훌훌 털어 넣고 집을 나선다. 얼어붙은 새벽 공기 속으로 담배 연기를 훅 내 뿜는다. 후후~ 담배연기인지 입김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만, 겨울 새벽에 피는 담배는 맛이 참 좋다.

카메라도, 가방도 챙기지 않았다. 핸드폰과 담배만 주머니에 쑤셔넣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바로 잠 들었다. 10시 50분, 서울 센트럴 시티에 도착. 배는 고팠으나 묘하게 배를 채우고 싶진 않았다. 바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종로3가 역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타려고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데, 저 멀리 인파 속에서 정복 경찰 3명이 서성댄다. 그 중 한명이랑 눈이 마주쳤다. 씨바. 이거 피하기도 뭐 하고 눈알 돌리기도 뭐 하고.
괜히 쭈뼛쭈뼛 하면서 경찰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날 붙잡는다.
"죄송합니다만,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며칠 전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시인의 향기가 난다'는 과찬까지 들은 몸인데, 내가 범죄형이냐? 감히 나를 불심검문 대상으로 찍으셨다? 기분이 팍 상해서 단호하게 '거부하겠습니다!'라고 말 하려고 했으나.

'경찰노동자인 니가 고생이 많다'는 연대의식이 발동하여, 온화한 미소로 '아, 꼭 해야 합니까?'라고 에둘러 거부의사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는 '협조 부탁' 어쩌고 하고. 나는 '그래 내가 인심 쓸게' 하는 마음으로 신분증을 보여줬다. 경찰은 바로 핸드폰으로 내 주민등록번호를 검색한다. 번호를 누르면서 '광주에서 오셨네요? 원래 안 하셔도 되는데...' 운을 떼길래, '네. 알고 있습니다'하고 경찰의 말을 막아버렸다. 그래도 '수고하시라'는 인사 정도는 건네고 다시 걸음을 뗐다. 여하간 아직도 서울에서 경찰만 보면 심장이 벌렁대네. ^^;;

11시 20분. 서울역 광장 도착.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물론 경찰들도 쫙 깔렸다. 웃기는 건 영결식장 바로 뒤에 배치된 경력들은 헬맷과 방호복을 착용한 채 방패를 들고 서 있다는 거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따뜻할까봐, 어린 전의경 아그들을 위한 지휘부의 어버이같은 배려는 아닐 것이고. 집회도 아니고 영결식인데 볼썽 사납게 왜 무장경력을 주변에 깔아놓으셨을까? 시민의 재산과 안녕을 수호하려는 깊은 뜻이야 내가 알 바는 아니고. 영결식을 운동권 집회로 보이게 만드려는 수작이 아닌가 슬쩍 의심해본다. 일종의 고립작전. 시민들에게 괜히 공포 분위기 조성해서 영결식을 고립시키려는.

한편, 서울역 광장 계단 위쪽에서는 '나라사랑 어버이연합' 등 한미혈맹결사수호애국열혈 어르신들이 집결하신다. 혼신의 힘을 다 해 용산참사 영결식을 항의하신다. 그러다가 주변에 있던 다른 어르신들로부터 무지막지한 욕설을 얻어 드시고 만다. 웃기지만,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실컷 욕을 얻어 드시고 말았다.

예정된 12시를 3,40분 정도 넘겨서 영결식이 시작되었다. 일행도 없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더 추울 것 같아서 맨 뒤쪽에 서서 영결식에 참석했다. 열사 약력 및 경과 보고, 각 인사들의 조사, 가수가 부르는 조가가 이어진다. 이 날 기온이 4,5도 정도 올라서 날씨가 풀린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그래도 서울은 서울인갑다 했다. 가만히 서 있으려니 온몸이 으슬으슬 춥다. 발꼬락 감각이 무뎌지려고 해서 신발 속에서 막 꼼지락 거려보고. 허리도 돌려가며 버틴다.

백기완 선생님이 무대 위로 오르신다. 아! 저 백발의 노인. 대단한 결기를 지닌 사람. '용산 학살', '이명박씨'... 그의 단어 선택에는 거침이 없다. 결국 '원통합니다.... 원통합니다....'하며 울먹이고 만다. 이런 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생님'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부디 건강하시길.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창조한국당 ???(죄송, 문국현씨 외에 아는 이름이 없다) 등 4당 대표들의 조사도 있었다. 이 순서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순이고, 마이크를 잡은 순서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순이었다. 의석수 순인거다. 흠. 그냥 가나다 순이나,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하면 안되나 하는 뻘 생각 잠깐 했다.

당 대표들의 조사에 크게 와닿는 말은 없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살아남은 자의 몫, 영면하소서...' 이렇게 요약되는 내용. 스타는 항상 마지막에 등장한다. 4당 대표 중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조사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었다.

그는 조사의 마지막에 용산참사로 희생된 또 한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무리한 진압작전 명령을 수행하다가 철거민 5인과 함께 희생된 경찰특공대원 김남훈 경사. 맞다.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 그 역시 희생자다. 그의 억울한 죽음도 우리는 추모해야 한다. 31살 꽃다운 아들을 잃고 산산히 조각나버린 부모의 심정 역시 우리는 따뜻하게 살펴야 한다. 노회찬 대표가 5명의 철거민 열사들에게 김남훈 경사를 만나면 따뜻하게 보듬어 달라고 말하는 순간 코끝이 찡 하고 안구에 습기가 찬다. 부지런히 눈꺼풀을 끔뻑거리며 겨우 안구를 진정시킨다.
검색해보니 고 김남훈 경사도 무허가건물의 옥탑방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세상 참....
노회찬, 정말 잘 했다. 내가 이런 거 몸으로 기억하려고 서울 간 거다.

고 이상림의 부인 전재숙씨가 유족 대표로 인사를 했다. 몇 번이고 '감사합니다' 한다. 몇 번이고 터지는 울음을 참아내며 말을 이어간다. 나는 또 부지런히 눈꺼풀을 끔뻑거려야 했다. 아! 전재숙씨는 터지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깊은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그 울림이 울음을 만들어버릴까봐 나는 고개를 떨구고 속다짐을 한다. 이 서러움, 분노, 원통함, 슬픔을 기억하자. 기억하자. 기억하자. 기억은 우리의 무기. 망각은 놈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독배.

안치환의 조가가 끝나고 참석 인사들의 헌화와 분향으로 영결식은 끝났다. 용산참사 현장 노제를 위해 운구차량과 고인들의 대형 초상화가 설치된 차량들이 이동준비를 한다. 이 때 영결식장 뒷편에서 작은 문제가 터졌다. 행진을 위해 5명의 고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어깨 동무하고 있는 대형 부활도를 수십명이 들고 차도로 나오려는데, 무장경력이 앞을 떡 막고 나선 것이다. 환장하시겠다. 차도 행진은 막지 않는데, 부활도는 안된단다. 부활도가 무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기라도 되는 거냐? 결국 나중에 길을 터주긴 했다. 애초부터 '불허'가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괴롭히고 시비 걸려고 작정한 것 같다.

부활도가 무사히 차도로 내려가는 걸 보고, 나는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용산 노제까지 참석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체 되었고, 광주로 내려가는 버스도 예매해둔 상황이라.

센트럴시티에 도착하니 급격히 허기와 피곤이 밀려온다. 김밥나라인가 김밥천국인가를 찾아서, 라면과 김밥 2줄로 배를 채운다. 눈이 내린다. 담배를 문다.

센트럴시티로 다시 들어와서 버스를 기다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고, 바삐 걸음을 옮긴다. 세상은 세상대로 흘러간다. 우리는 우리대로 기억하자.

故 윤용현, 故 양회성, 故 이상림, 故 한대성, 故 이성수, 그리고 故 김남훈

본 블로그의 장례위원 신청 권유 글을 보고 강삥삥, 이띵띵, 최낑낑 등 세 분이 장례위원에 등록하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받은 자료집에서 직접 세 분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깨알같은 활자에 불과했지만 반가웠습니다. 아래는 용산참사 범국민장 전면광고가 실린 한겨레 1월8일치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