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비엔날레를 무료 관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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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비엔날레를 무료 관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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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잔차 라이딩의 목적지는 비엔날레 공원이었다.
거기서 사진 찍고 있을 성욱이 형이나 잠깐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패달을 밟았다.
어린이 대공원 후문 쪽으로 진입하여 비엔날레 전시관 쪽으로 가는 도중에 차도엔 바리케이트가 쳐 있고, 인도엔 매표소가 설치돼 있었다.
'전시관에서 표를 팔면 혼잡하니까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미리 표를 구입하게 하려는 거군. 괜찮을 발상이야.'
라고 혼자 생각하며 바리케이트와 인도 사이의 틈으로 아주 부드럽게 주행해 들어갔다.
비엔날레 전시관에 도착해서 성욱이 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만난 성욱이 형이 물었다.

"표 사가지고 들어왔냐?"
"아니. 전시관은 안 보고 그냥 형 잠깐 보고 가려고."
"아니. 게이트로 들어올 때 표 안 샀어?"
"표? 전시관 안 들어갈건데 뭘..."
"게이트가 3곳이 있는데 거기서 표 사야 들어올 수 있는디..."
"어라! 그럼 아까 그 곳에서 표를 사야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근디 내가 잔차 타고 들어가는데 아무도 안 잡던데..."
"휴일이라 근무하는 사람들이 해이해져서 그랬는갑다."
"그럼 나 지금 공짜로 들어온거야? 그럼 전시관도 그냥 들어갈 수 있다는?"

그랬던 거다.
나는 본의 아니게 돈 안내고 들어와버린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잘못된 거다.

매표와 함께 검표도 전시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다면, 비엔날레와는 상관 없이 평소처럼 중외공원만 이용하려는 시민들도 비엔날레 입장료를 내야 하는 거다.
매표는 멀리 떨어진 매표소에서 따로 하더라도, 전시관 앞에서 검표를 하여, 공원만 이용하려는 시민들에게까지 요금을 내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일률적으로 나이로 구분하는 요금체계나 개인과 단체로 구분하는 할인체계에도 문제가 있다.
용돈 많이 받는 10대도 있고, 단돈 천원도 아쉬운 30대도 있다.
물론 이걸 객관적으로 구분하여 요금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친절한 요금체계가 필요한 거다.
예를 들면, 전시관은 총 5개 갤러리로 나뉘어 있는데, 1개 갤러리당 별도로 요금체계를 만드는 거다. 12,000원을 내고 5개 갤러리를 모두 볼 수 없는 형편이라면, 2천원만 내고 한 갤러리라도 볼 수 있도록 해주는거다.

그리고 12,000원 내고 5개 갤러리를 모두 보는 것은 상당히 고역이다.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생각하고 대화하면서 5개 갤러리를 모두 한번에 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더라도 이 얼마나 반문화적인 감상행위인가!
'시간관계상' 영상 작품들은 대충 훑고 지나가거나 건너뛰기 십상이다.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 많더라도 감상시간이 2시간을 넘기게 되면 몸이 힘들어지고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거의 기계적으로, 돈값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갤러리를 돌게 된다.

1개 갤러리당 요금체계를 도입하면 12,000원짜리 입장권 하나로 하루에 무조건 다 돌아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은 1갤러리, 내일은 2갤러리 감상하고, 다음 주 주말에 찾아와 나머지 갤러리도 보고...
조금이라도 정의롭고 여유로운, 그리고 문화적인(!) 문화생활 좀 하자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