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대의 시작

지난 2월27일 한국젠더법학회가 주최한 ‘저출산 시대, 낙태를 처벌해야 하나’ 세미나에 참석한 김은애 홍익대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원치 않는 임신을, 여성이 과연 혼자 하는 것인가’ 먼저 반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흔히 낙태를 비난하는 이들은 ‘문란한 성 관계’가 원치 않는 임신을 낳았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하다못해 여성이 피임을 요구할 ‘성적 측면에서의 자기 결정권’을 제대로 갖고 있느냐고 김씨는 되묻는다. 2005년 복지부가 고려대 의대에 의뢰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혼 여성 낙태는 연간 19만 건(58%), 미혼 여성 낙태는 14만 건(42%)으로 기혼 여성 낙태율이 더 높다. 기혼 여성도 이렇게 피임에 실패하는 것이야말로 성 관계에서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김씨는 지적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대부분의 책임은 여성에게 돌아간다. 낙태를 선택하건, 낳아 키우는 쪽을 선택하건 마찬가지다.
법적인 면에서도 여성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위치에 있다. 낙태를 일부 허용한 모자보건법에서는 낙태 시술 시 배우자(남성)의 동의를 반드시 구하도록 정하고 있다. 반면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형법에서는 불법 낙태 적발 시 형사 처벌 대상을 여성과 산부인과 의사만으로 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합법적이어서 도덕·윤리적으로 흠이 발생하지 않을 만한 부분에서는 남성을 끌어들이면서, 반대로 불법적인 부분에서는 비도덕성·비윤리성에 대한 비난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덮어 씌우는” 가부장적 구조가 온존하고 있다고 김은애 연구원은 지적했다.

-시사IN 131호 <낙태 논쟁에 가려진 '착취의 트라이앵글'> 기사 본문에서 발췌-

이 기사에서 제기하고 있는 '착취의 트라이앵글'이란, 성적인 착취, 계급적 착취, 세대간 착취 등 세가지를 말한다. 예컨대 여성이고 가난하며 10대 또는 20대이기까지 한 사람은 낙태와 관련하여 3중 착취를 당한다는 것.

묘하게도 노동자와 여성의 처지는 닮았다.

자본주의는 숙명적으로 노동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이 일시에 일손을 놔버린다면 자본은 더이상 증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경영을 넘보는 노동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자유롭게 놀고 먹는 사람들이다. 자본의 목숨줄은 사실 노동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처럼 노동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매우 강력한 위치에 있지만, 오히려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쪽은 노동이다.

한편 국가는 필연적으로 인구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에게 적정한 인구의 유지는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핵심 문제다. 그래서 국가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인구조정에 관한 통제권이 약화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산에 관한 최종결정권은 어쨌거나 여성에게 있다.[각주:1]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는 강한 수단이 파업이듯, 여성에게도 출산을 거부하는 '출산파업'은 국가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강한 수단이 된다.

하지만 왜 노동자는 항상 지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고, 여성은 다짜고짜 또는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남들 다 하는 건데'식으로 '엄마'가 될 것을 강요당하는가?(그러니까 출산과 육아에 대한 국가와 사회적 책임은 형편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을 돌아보면 답이 있을 듯. 흠.

이런 생각도 든다.
노동자라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고,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영세기업 노동자가 다르다. 사무직 노동자가 다르고 생산직 노동자가 다르다. 남성노동자가 다르고 여성노동자가 다르며, 20대 노동자와 40대 노동자가 다르다.
또 여성이라고 다 같은 여성이 아니다. 자식을 낳으면 여성은 '엄마'가 되고, 아들을 결혼시키면 여성은 '시어머니'가 된다. 오빠가 결혼하면 여성은 같은 여성인 오빠의 배우자 앞에서 '올케'가 된다. 자식이 학교에 입학하면 여성은 '학부모'가 되고, 백화점에 가면 여성 노동자 앞에서 여성은 '사모님'이 된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같은 노동자임을 자각하기 시작할 때 노동의 현실은 나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은 여성임을 이해할 때 여성의 삶은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이것이 연대이고 단결이다. 최소한 여기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어쨌든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