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킥은 명품 좌빨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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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은 명품 좌빨 시트콤

TV 보기를 돌 같이 하는 나도 꼬박꼬박 챙겨본 것이 바로 <지붕킥>이다. 시트콤이 나를 웃기고 울리는 '작품' 노릇을 할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다양한 사회문제를 절묘하게 건드리고 가는 걸 보면서 좌빨 성향의 불경스런(?) 시트콤이 아닌가 의심을 했는데, 마지막회에서 본색을 확 드러낸다.
지붕킥은 계급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좌빨 시트콤이 분명하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지훈의 자가용 안에서 세경의 슬픈 사랑 고백을 빙자하여, 지붕킥은 '내가 바로 좌빨 시트콤이오!' 하고 자백하고 만다.

검정고시 보고 대학 가고 싶었다며, 계급의 사다리를 한칸 더 올라가고 싶었다던 세경이. 하지만 자신이 한 칸 올라섰을 때 그 밑에 다른 사람이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는 세경이.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식탐 많은 동생이 먹을 것 앞에서 눈치를 보고, 아파도 돈 없을까봐 병원 갈 생각도 못하는 걸 보며 마음이 아팠다는 세경이.

중소기업 사장인 순재와 초등학교 교감인 자옥은 별 갈등 없이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2류대학 졸업한 청년실업자인데다 가세가 기울어 알바를 전전해야 하는 정음은 의사 지훈에게 이별을 말하고 떠난다. 부잣집에 사는 의사 지훈을 좋아하지만, 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세경은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고백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훈과 세경은 흑백으로 정지된 시간에서 끝나고 만다.

현실에서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을 볼 수 없게 된 우리는 시트콤에서조차 현실과는 다른 사랑을 볼 수 없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더라도, 시트콤에서는 우리의 로망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지붕킥은 차갑게 현실을 보여준다. 시트콤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한 지붕킥은 오히려 '이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야'라고 비극을 보여주고 만다.
계급을 넘어서는 사랑은 세경이 지훈에게 '저 아저씨 좋아했어요'라고 고백하던 그 순간, '지금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하던 그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다. 세경의 바람대로 그 시간은 그대로 정지되었다. 영원히. 죽음은 시간을 영원히 정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명장면이다.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운전 중인 사람에게 사랑 고백은 하지 말라 또는 운전 중 사랑 고백을 받더라도 전방주시 의무를 태만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었다.

지붕킥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는 채플린의 말을 인용할 줄 알았다. 영화 <접속>을 패러디하면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를 잔잔하게 들려 주기도 했다. 또 세경을 몰래 좋아하는 준혁 학생이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를 패러디하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이 뿐인가. 세경이 지훈에게 고백할 때 깔린 음악이 Rachael Yamagata와 Ray LaMontagne이 함께 부른 'Duet'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우와 정말 죽이는 선곡이다.

세경 만큼이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다름아닌 해리다. 막무가내로 원하는 걸 하고야 마는 천둥벌거숭이로 그려지지만, 한국 어린이가 처한 현실을 놀랍도록 치밀하게 보여준다. 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에서 자라지만, 가족 중 누구도 해리를 아끼고 보살펴주지 않는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못말리는 떼를 써서 갖고야 마는 해리에게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자옥이 합숙교육을 시키지만 결국 실패 ㅋㅋ) 해리가 떼를 쓰면 대충 원하는대로 해줘버린다. 해리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소란한 사태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부유한 환경에서 가족과 함께 살지만, 누구도 해리의 비정상적인 욕망 충족에 진심으로 관심 갖지 않는다.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학원과 선행학습을 강요하는 것이 '좋은 자식 교육'이라고 착각하면서, 정작 '사람이 되는 교육'은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우리의 세태 그대로다. 우리는 일제고사까지 밀어붙이면서 아이들의 성적을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만, 아이들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무관심하지 않은가.

해리는 시트콤이라 웃기고 귀엽게 볼 수 있는 캐릭터이지만, 실제상황이라면 구제불능 괴물이다. 해리는 어려서부터 외로움에 익숙해야 하는 한국 어린이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해리의 유일한 친구는 자기집에서 식모살이 하는 세경의 동생 신애 뿐이다. 그러나 해리는 신애를 막 대한다. 자신이 강자임을 아는 것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가난한 식모 세경에게도 '큰 빵꾸똥꾸'라고 막 대한다. 약자에게 한없이 강한 어른들의 사고와 행동 그대로다. 하지만 해리도 어쩔 수 없는 어린 아이다. 신애가 이민을 간다는 말에 '내 허락 없인 어디도 못가'라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호소한다. 신애가 떠나고 텅빈 집에 돌아와서 신애를 찾으며 펑펑 우는 장면은 세경의 고백 만큼이나 슬펐다. 친구와 정신없이 뛰어노는 것이 유일한 사명이어야 할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다. 기껏 논다는 것이 컴퓨터 게임이다. 혼자 노는 아이가 많다. 외로운 아이들. 이거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다. 우석훈이 그랬던가. 공부 잘 하는 아이는 잘 노는 아이를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지붕킥은 웃으면서 보면 희극이지만, 생각하면서 보면 비극이다. 지붕킥은 두 가지 모두 성공한 희귀한 시트콤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해리의 '빵꾸똥꾸', '언능언능! 빨리빨리!'를 들을 수 없다니, 그 허전함은 개콘조차 채워주지 못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