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릿재에서 만난 멧돼지 새끼들
diary

너릿재에서 만난 멧돼지 새끼들


늦은 밤 X와 너릿재 옛길로 드라이브를 갔다.
자전거 타고 오를 때에는 '숨 차 죽겠는데 매연까지 들이마셔야 하냐' 하면서 자동차 타고 오는 사람들을 무척 싫어했는데. 평일 늦은 밤이라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갔다.고 변명해본다. 난 가끔 뻔뻔하니까. ㅋ

올라가던 중에 놀랍게도 멧돼지 새끼 4마리와 조우했다. 전조등 불빛에 뭔 물체들이 비치길래 '뭐야 저거' 했는데, 보니깐 멧돼지 새끼들이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놀라서 바로 산으로 도망갈 줄 알았는데, 자동차 불빛에 엄청 겁 먹었는지 길 위에서 우왕좌왕 한다. 보는 우리는 신기하고 놀랍고 귀엽고 막 그랬는데(그래서 사진까지 찍었다능), 녀석들은 또 얼마나 쫄았을까 하고 뒤늦게 미안스럽긴 하다.

우리는 끝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새끼들 근처엔 반드시 어미 멧돼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겁먹은 건 저얼대 아니다.라고 주장해본다. 영화 <차우>가 떠올라서도 아니다. 뭐.

여하간 예상못한 재미난 경험을 선사해준 녀석들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좀 했다. 뭐냐면 동구청에 로드킬을 방지할 수 있도록 민원을 냈다. '귀하의 소중한 의견 감사... 동구청은 생태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음... 버뜨, 반영할 예산이 부족하므로.... 방법을 강구... 노력... 최선... 동구 발전에 관심과 애정 부탁...' 요렇게 요약되는 처리결과 회신이 오지 않을까 우려스럽긴 하다만. 일단 뭔가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
아니면... 아니면! 그건 그 때 봐서 행동한다.

아래는 동구청에 올린 글
수고가 많으십니다.
며칠 전 밤에 너릿재 옛길을 자동차로 올라가던 중 멧돼지 새끼 4마리와 마주쳤습니다.
다행히 올라가던 중이라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사고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만, 만약 내려오던 중이었다면 로드킬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아찔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너릿재 옛길을 찾고 있습니다. 멧돼지가 로드킬을 당하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를 피하려다 인명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 멧돼지 출몰에 대하여 시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너릿재 옛길 입구와 쉼터 등지에 '멧돼지 출몰, 로드킬 주의'를 알리는 표지판 설치를 건의드립니다.

덧붙여,
너릿재 옛길은 폭이 매우 좁고 중앙선 구분이 없으며, 굽어진 구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려오는 자동차와 올라가는 자동차가 서로를 발견하지 못해서 충돌할 위험이 큽니다.
특히 자전거 라이더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서, 자전거와 자동차 간 충돌 사고 가능성도 높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고가 몇 차례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이 사고 방지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감속을 강제할 수 있도록 주의표지판과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굽어진 구간에서는 서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볼록거울 설치도 건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