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면제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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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면제 때문이 아니다

2010.11.26. 스포츠서울 만평

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다수의 고위 관료들이 병역면제[각주:1] 때문에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병역면제'라고 쓰고 '병역기피'라고 읽어야 합당한 것 같기도 하고. 부모 잘 만난 놈들은 미꾸라지처럼 현역복무를 피하고, 부모 잘못 만나면 빼도박도 못하고 현역병으로 징집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공직자 본인과 그 아들의 병역면제는 두고두고 욕먹을 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역병 복무가 공직자나 정치인의 마땅한 자격인 것처럼 인식되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도발'이나 교전으로 꽃다운 나이의 사병이 죽고 다치는 일, 그 후 하나씩 드러나는 고위 간부들의 어처구니 없는 직무태만이나 부실한 규정과 제도 등...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평소 이명박을 욕했던 사람들은 '병역미필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 그 모양이다'는 식의 비난을 쏟아낸다. '군대도 안갔다 와서 군대를 제대로 통솔할 수도 없고 영이 서지도 않는다'는 식.
인민들은 정부의 잘못에 대해 욕하고 비판하고 조롱하고 비웃을 권리와 자유가 있다. 하지만 '군대를 갔다와야 한다'는 인식이 논리가 되고 자격의 근거가 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명박 정부에서 국가가 강제징집한 사병들을 존귀하게 품는 자세라곤 찾아볼 수가 없고, 국방이나 안보정책이 영 부실한 이유는 그들이 병역면제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박 정부는 인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자들을 위한 정부이기 때문에 평화나 통일, 자주국방, 사병복지 따위에는 예산과 행정을 투입하지 않는 것이다. 명박과 그 측근들이 모조리 병역필 했다고 하더라도, 사병들이 죽어나가고 인민들이 전쟁 위험을 느끼게 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병역필이냐 면제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비리나 편법 따위를 저질렀느냐가 중요하다. 게다가 군복무 경험이 국군통수권 행사에 미치는 영향 같은 건 무시할 수준이 아니겠냐. 국군통수권이란 게 군복무 경험에 도움을 받을 정도로 단순한 것은 아니잖은가. 그렇지 않다면 병역면제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도록 헌법을 바꿔야 할 것이고. 여성과 장애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도 평등하게 공무담임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정신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나. 정운찬 전 총리는 인사청문회 때 자신의 병역면제가 논란이 되자 '세계 지도자 중 여성이기 때문에 군대 안가고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메르켈도 있고 대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문제는 단순히 병역면제가 아니라 병역기피 의혹이었다는 본질을 모른 척한 것에 불과한 것이긴 하다만.
병역면제는 명박 정부를 조롱하고 힐난하는 데 유용할 수 있지만, 국방정책의 부실과 실패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병역면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보다는 명박 정부가 누구를 위해 일하고 존재하는지 살피는 것이 좀더 타당한 '이명박 반대'일 것이다.
실제로 '병역면제 정권'이라고 여론이 악화되자, 안상수 같은 자가 '전쟁 나면 입대해서 싸우겠다'고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을 농담을 진지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안보관계 장관이나 참모 중에 병역면제자를 정리해달라'는 홍준표 의원의 말도 비슷한 것이고. 아닌 말로 명박 정부는 여론 눈치를 보다가 병역면제자 몇명 정리하고 난국을 피해갈지도 모른다. 국방정책의 총체적 실패에 대한 책임과 규명은 여론이 되지도 못할 것이고.
문제는 명박 정부가 '병역면제 정권'이라는 게 아니라, 평화와 인민의 자식들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데 있다.
  1. '병역미필' 대신에 '병역면제'가 합당한 표현이라고 본다. '미필'은 '어떠한 사정으로 아직 필하지 않았다'는 뜻이므로 언젠가 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앞으로 병역을 필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은가. 솔직히 '병역면제'보다 '병역기피'가 더 적확하다고 생각하지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