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옷
diary

엄마의 옷

얼마 전 엄마의 전화. 간단한 안부가 오가고 엄마는 참 어렵게 말을 꺼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엄마가 한 말은, "계모임에서 놀러가기로 했는디야. 엄마가 옷이 딱히 없이야. 허허허. 긍게 근디야... 니 카드로 옷 하나 사도 되냐?"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시라고 했다. 싼 거 사지 말고 마음에 드는 걸로 비싼 거 사시라고 했다.

10년도 전에 아무 때나 쓰시라고 카드를 하나 드렸다. 처음 몇년 동안 결제문자 하나 받지 못했다. 시시때때 카드 쓰시라고, 맛있는 것도 사드시고 옷도 사시라고 설득도 하고 화도 내고 그랬다. 그 결과 부모님은 집 앞에서 순대국밥이나 뼈해장국을 사드시곤 했다. 결제금액 1만4천원. 그조차 1년에 다섯번을 넘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2,3년 전부턴가 가끔 동네 마트에서 결제한 문자를 두어번 받은 것도 같다.

여하간 며칠 뒤 카드결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금액을 보고 조금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바로 엄마한테 전화해서 옷 사셨냐고 했다. 잘 하셨다고 마음에 드시냐고 했다. 엄마는 또 멋쩍은 웃음과 함께 "너무 비싸지야잉" 했다. 아니라고 잘 하셨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흠 당분간 돈 안써야겠군 했다.

그리고 오늘 가족 모임을 했다. 식사를 하고 바람 쐬러 가자고 했다. 엄마는 당직 서고 온 나 피곤하다며 극구 뭐하러 가냐고 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우겨서 가족 모두 드라이브를 갔다. 아빠는 지리산 성삼재를 이야기했으나, 엄마가 단칼에 잘랐다. 여하간 차 안에서 엄마 옷이 화제에 올랐고, 엄마는 아빠가 더 마음에 들어 한다고 했다. 집에서 자꾸 입어보라고 한다고. 색깔도 아빠가 고른 거라고. 그리고 옷가게를 나서면서 아빠가 "당신 옷은 내가 사줘야 한디, 원종이가 사주게 하네잉." 했다고 한다. 그 때 아빠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고 엄마가 말했다. 운전하던 나는 "아빠가 나 키웠응게, 아빠가 사준거랑 똑같은거제"라고 했다. 어떻게 이런 기특한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