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맹목, 언론자유마저 외면하는가
opinion

혐오와 맹목, 언론자유마저 외면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행사를 취재하던 한국기자와 청와대 행정관이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 이 뉴스를 보고 '미친놈들'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날까지만 해도 아직 정확한 전후 상황이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경호원의 기자폭행은 명백한 잘못이기 때문이다. 동영상만 봐도 경호상의 필요에 따른 제압이라기보다는 폭행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게 아니라,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하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가. 설사 피해 기자가 사전에 합의된 동선을 벗어나 무리한 취재를 하려고 했다 하더라도(현재 확인된 바로는 청와대가 허용한 취재였다고 한다), 물리력으로 접근을 못하게 막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정상적이다.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하는 것이 정상적인 경호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이 사건 뉴스의 댓글에 또 '짱깨들'이라고 욕하는 표현이 난무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레기들이 맞을 짓을 했겠지',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를 깎아내리더니 시원하다'는 식의 반응이 절대적이다. 물론 댓글이 여론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분위기는 꽤나 의외다. 특히 이들 상당수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우려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시절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권력으로부터 푸대접받거나 왜곡보도된 것, 대통령이 된 지금도 언론권력의 왜곡보도나 여론호도로부터 정책 집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지자들로서는 미운 언론이고 적폐이며, 심지어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일정 부분은 동의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심정적 태도는 '기자 폭행'에 대하여 '시원하다'거나 '맞을 짓을 했겠지'라는 식으로 표출되어 사태의 심각성이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명박근혜 시절 언론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이나 분노는 시민으로서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맞아도 싸다'는 식의 감정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외국에서 대통령을 동행취재하는 기자에 대한 상대국 경호원의 폭행은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고 언론자유라는 측면에서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 언론에 대한 어떠한 폭력적 행위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 언론이 적폐이며 정치적 입장에서 적이라고 하더라도, 이 원칙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레기'들로부터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해서, '기레기'들에 대한 명백한 폭행을 '속시원하다'고 반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한국의 여론이 '기자들이 잘못했다'는 식으로 흘러가면 누가 이로울까? 한국 정부가 기자폭행 사태에 대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중국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고 해도 중국으로서는 서두를 이유가 없어진다. 중국 관영매체에서는 이미 '한국 여론도 기자의 잘못이라는 분위기'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라면 오히려 더욱 분개하고 중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난해야 맞다.

'중국 경호원의 한국 기자 폭행'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배경에는 '기레기'에 대한 혐오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폭발적 지지와 급격한 추락". 최장집 교수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나오는 말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그의 평가를 함축한 표현으로 이해한다. 비판이 배제된 지지는 오래 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지지가 아닌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인물에 대한 맹목이 어떠한 병폐가 있는지는 박근혜 지지자들에게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아무리 확인된 사실을 말해도 그들에게는 오직 '박근혜'만 중요할 뿐이다.

조선일보의 문재인 비판과 경향신문의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과 결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왜 비판만 하느냐'며 '똑같은 기레기'라고 폄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권력 비판은 언론의 기본 책무이고 존재이유다. 정치권력은 쉼없이 언론의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어떠한 정권도 예외없이 마찬가지다. 물론 언론도 권력으로서 시민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언론의 왜곡보도가 문제라면 그 자체를 비판할 일이다. '기레기'라는 혐오는 쌓인 감정을 배설하는 데 유용할지는 몰라도, 언론을 제대로 감시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면, 혐오와 맹목을 거두고 객관적인 사실판단을 토대로 적극적인 비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