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우리 세대들 사이에서 아톰은 요즘 말로 하면 문화아이콘이었다.
웬만하게 사는 집 애들은 모두 아톰 장난감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비교적 웬만하지 못했던 우리 집 살림 때문에 나는 녀석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곱게 말해 부러웠지, radical하게 표현하자면 난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톰 장난감을 갖고 싶은 욕망을 억압당해야 했다.
난 사실 이게 매우 불만이었다. 왜 저 녀석들은(특히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 녀석들 말이다) 아톰 장난감을 가질 수 있는데 난 그럴 수 없을까?
물론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정치의식으로는 내 욕망을 거세한 자본주의의 실체를 알아챌 순 없었다.
하지만 불만이 있으면 그걸 표출할 대상을 찾아야 정신건강에 좋은 법.
내가 아톰 장난감을 갖지 못하게 한 철천지 원쑤는 자본주의(그런데 사회주의체제였다면 나는 아톰 장난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임에도 불구하고, 내 불만을 엄마한테 드러내고 말았다.
하긴 어린 아이에게 가장 거대한 체제는 엄마였다.
욕망을 억압당하고 있던 어느날 물 청소를 하고 있던 엄마에게 가서 소리쳤다.
"엄마! 나 아톰 사줘!"
내 딴에는 목에 힘주어 크게 소리쳤다고 생각했지만, 체제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작아지는 법.
아마도 내 목소리는 개미들의 발걸음 소리보다 더 작았을 거다. 엄마는 내 외침을 듣지 못했다.
엄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엄마! 나 아톰 사줘!"
내 외침이 엄마의 귓속까지 전달되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리 가서 놀아!"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다.
"1500원만 주면 돼!"
말이 1500원이지 지금 돈으로 치면 몇 만원은 될 거다.
이 말을 하면서 내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얼굴은 거의 울상이었다.
엄마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시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물 묻은 지폐를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시면서 엄마는 늘 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공부 열심히 해야 돼"
그 때의 교훈은 이렇다.
'불쌍하게 보이면 쉽게 들어 주는구나.'
어쨌든 나는 아톰 장난감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돈에 있어서는 한없이 엄격했던 엄마의 주머니에서 그런 거금을 내 힘으로 빼냈다는 희열을 더 크게 느꼈다.
그런데 그 후 아톰 장난감을 어떻게 갖고 놀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돈으로 딴 걸 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