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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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을 위하여

노회찬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안타까움이 끝이 없다. 어디선가 보았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결국 외로운 것이라고. 지울 수 없는 가난, 우울, 감당할 수 없는 슬픔 등을 자살의 원인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결국 외로운 것이라고.

어제 오전 일하다가 포털사이트에서 '속보' 제목을 보고 나도 모르게 '뭐야 이거' 했었다. 심장이 좀 빨리 뛰는 것도 같았다. 몸이 좀 떨리는 것도 같았다. 오보인가, 바라기도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노회찬의 죽음은 사실이었고, 이런 저런 뉴스들이 쏟아졌다. 하나 하나 읽고, 댓글도 읽고 아무리 읽어도 나는 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노회찬은 진보정치의 아이콘이고 간판스타가 맞다. 진보정당은 그의 인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촌철살인, 말의 품격, 유머. 사람들은 노회찬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노회찬은 의외로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그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노회찬과 개인적 친분은 없다. 다만 과거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일로 가까이 볼 기회가 몇 번 있었을 뿐이다. 지방선거유세 지원을 왔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인기에 비해 과묵한 편이었다. 당원들과 밥을 먹을 때에도,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그의 입은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웃기 위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본 노회찬은 거의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는 모습이었다. 방송 토론에서 강연회에서 예능인을 능가하는 입담과 말발을 자랑하지만, 평소에 노회찬은 온화하게 누군가의 말을 듣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런 노회찬을 외롭게 만들었다. 얼마를 받았는지, 위법이든 아니든 우리는 노회찬을 외롭게 만들었다. 척박하고 엄혹했던 시절부터 진보정당의 씨앗을 뿌리고 풍찬노숙했던 노회찬에게 우리 모두는 빚을 지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국회의원 세비를 세금낭비라며 힐난하고 환수해야 한다고 성토한다. 물론 심정적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신당,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당 소속 국회의원의 세비는 전액 당에 납부하는 것으로 안다. 당이 세비 전액을 납부받아 정책개발비 등으로 사용하고 일부를 의원에게 '월급' 주는 걸로 안다. 정확한 팩트는 모르겠지만. 노회찬 의원이 당으로부터 받는 '월급'은 180만원이라는 말도 있다. 지역구 정치인으로서,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들로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돈은 꽤 많았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구조는 고비용 저효율이다. 지역구 사무실 운영하는 데에만 한달에 최소 천만원 이상 들어가고, 선거 한번 치르려면 억대가 기본이다. 정치자금법은 거대정당과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고 소수정당과 정치신인에게는 가혹할 만큼 불리하다.

우리가 정치를 욕하고 국회의원 세비를 성토하면서 마치 정치에 대단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동안, 노회찬은 날마다 돈 걱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유서에 적은 것처럼 '어떠한 청탁도 없'는 돈이었으니, 솔직히 유혹이 없을 수 없다. 나는 그가 처했을 현실이 딱하다. 그 돈을 받고 한시라도 마음 편할 때가 있었을까. 그 자괴감의 깊이를 헤아릴 자신이 없다. 결국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그는 괴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저 먹먹할 뿐이다.

그리고 미안하다. 참으로 미안하다. 한때 나는 '자랑스러운' 민주노동당 당원이었으나, 분당 사태를 겪으며 탈당하고 그 뒤로는 멀찌감치 물러서서 관망만 하고 있었다. 정파 논리에 평당원이 설 자리가 없다고 손가락질 하고, 나 먹고 살기도 벅차다고 변명했다. 그래도 선거 때마다 정의당 후보에게 투표했으니 그 정도면 괜찮다고. 그렇게 자위하고 있었다.

노회찬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기 전에, 혹시 모르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는 있었는지, 노회찬이 사실을 털어놓고 법적 처벌이든, 당의 징계이든 받을 수 있도록 차라리 정계 은퇴라는 출구를 만들어줄 수는 없었는지... '당신도 그냥 보통 사람이어도 된다고, 처지가 곤궁해서 돈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우리가 말해줄 수는 없었는지. 언론은 평소 그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그런 엄격한 잣대가 꼭 노회찬만의 것이었을까. 우리가 노회찬은 그래야 한다고, 진보 정당은 한점 티끌도 없어야 한다는 순결주의의 덫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닌지. 한번은 자문해야 하지 않을까.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사실이 무엇이든 그가 모든 걸 혼자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 그가 당신의 속내를 잘 얘기하지 않는 분이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나서 그와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에서 하겠지, 현직들이 하겠지, 편하고 쉽게 생각했다"는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일 것 같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남겨진 사람들이 할일을 찾아야한다. 이제 노회찬은 없지만, 우리가 노회찬을 위하여 할일은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