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테이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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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 1

# 1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전축이 있었다. 태광 에로이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내 가슴 높이 만큼 큰 스피커가 있었다. 음악감상을 취미로 하는 그런 집안 분위기는 아니었고, 트로트나 경음악 테잎이나 라디오가 켜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는 늙으면서 자꾸 잘 나갔던 왕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이 전축이었다. 주변 사람들 중에 최초로 전축을 샀었다 뭐 이런 이야기다. 아빠 말에 따르면 왕년에 '최초로' 산 것들이 많다. 카메라도 최초로 사고, 전축도 최초로 사고. 물론 믿거나 말거나.

턴테이블도 있었는데, 태광 에로이카 CM송 같은 게 담겨 있는 LP판이 있었다. 아마도 전축 살 때 끼어있었을 것 같다. 아빠로부터 턴테이블을 돌리는 법을 배우고, 나는 이 판을 돌리는 걸 즐겼던 기억이 있다. 뭔가 되게 웅장한 소리로 기억한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처럼 쾅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에 굵직한 남자 어른의 목소리로 '태광 에로이카!'하는 대충 그런 소리였다. 볼륨을 올리고 스피커 커버를 벗기면 유닛의 공명판이 부르르 떠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음향은 커녕 음파의 원리도 몰랐던 나는 우와우와 하며 신기해 했고, 재미난 놀이였다.


# 2

지난 8월 아날로그에 대한 추억에 빠져 턴테이블 하나를 들였다. 요즘 나오는 저렴한 새 제품들은 허접한 부품에 겉모양만 그럴싸 하다는 고수들의 조언에 7~80년대를 풍미한 일본산 턴을 중심으로 중고매물을 찾았다. 그 당시에는 1백만원을 넘었다는 제품들은 요즘 새 제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급 부품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턴의 특성상 택배거래하겠다는 판매자는 거의 없다. 우여곡절 끝에 택배거래로 내 손에 들어온 턴은 Sansui FR-D3 이라는 모델이다. 처음 들어본 제조사인데, 대충 알아보니 당시에는 앰프나 리시버, 스피커 등 음향기기 시장에서 나름 알아주는 제조사인 듯.

원래 쓰던 초싸구려 인티앰프에는 포노단자가 없다. 이번 기회에 인티앰프도 업그레이드! 마란츠 PM6006을 들였다.

여하간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톤암과 헤드쉘, 플래터 등이 분리되어 들어 있다. 예민한 기기라서 안전상의 이유로 그랬다는데.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인데, 인터넷 찾아보면서 대충 모양새는 갖춰서 조립 완료. 침압과 안티에이징 따위 대충 맞추고. 일단 소리를 내는 게 목표이니까. LP를 올리고 긴장감 가득 톤암을 살포시 내렸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삼십 몇년만에 턴테이블을 돌리며 감격. 그런데 톤암 오토리턴이 안된다. 그냥 수동으로 쓰지 하는 생각으로 한달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핸델의 '메시아'를 듣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음이 아주 짧은 순간 늘어진 것 같은 찝찝함. 스트로보 스코프 램프를 들여다보며 피치 조절을 해봐도 점선이 완전히 정지되어 보이지 않고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린다. 속도 불안정이 의심되는 상황. 아무리 중급 이상 제품이라도 세월 앞에 장사 없는 건가. 수리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게 삼*이나 엘* 같은 전자제품도 아니고. 구글을 다 뒤져도 반도상가 앞 어디에서 '나사장'을 찾으라는 댓글만 보았다. 무슨 왕서방 찾기도 아니고. 여하간 반도상가 주변에 수십년을 전자제품 수리업을 하는 숨은 장인들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일단 가보자는 결심을 했다.


# 3

.....조만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