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서른 세번째 가을

    서창의 들녘은 며칠 사이에 누런 빛으로 바뀌고 있다. 수확의 계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 여름 마지막 태풍이 지나간 직후의 하늘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가을 하늘의 대부분을 좋아한다. 하긴 가을하늘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한국 국가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가을하늘. 첫새벽의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또 좋아한다. 태어나 서른 세번째 가을을 맞이하는 중이다. 저녁무렵 가을하늘을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본 적이 없다면 뭔가 문제 있는 삶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살았다. 가을하늘의 절정은 저녁 무렵 뉘엿뉘엿 저무는 해다. 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시 한편 있다. 서른 세번째 맞이하는 가을, 저무는 해 앞에서 시를 읊조리고 돌아오다. 저녁 무렵 /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

    흔들리며 피는 꽃

    범능스님이 부르는 노래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잖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면서 꽃망울 고이고이 맺었나니 흔들리잖고 피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서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비바람 속에 피었나니 비바람 속에 줄기를 곧게 곧게 세웠나니 빗물 속에서 꽃망울 고이고이 맺었나니 젖지 않고서 피는 사랑 어디 있으랴 자연에서 시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인간사에 조화시키는 시인의 섬세함.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하지만 시들 때까지 흔들리기만 하는 꽃도 없다. 흔들리다가도 보란듯이 우뚝 서는 때가 있다. 흔들리기만 한다면, 꽃도 사랑도 어찌 견딜 수 있을까. 흔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