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름을 싫어할 수 없는 이유

    습하고 덥다. 한낮의 햇볕은 살갗을 녹일 듯 내리쬔다. 여름은 힘든 계절이다. 에어컨 덕분에 여름을 견디는 것도 맞지만, 여름을 싫어만 할 수 없는 까닭은 구름 때문이다.특히 태풍이 지나간 뒤 남은 구름의 풍경은 넋 놓고 바라보기에 충분하다. 이런 구름은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고, 여름에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아, 그리고 여름은 자전거 타기에 겨울보다는 나은 계절이다. 겨울에는 보온과 방풍을 위해 옷을 껴입고 온몸에 빈틈없이 장구류를 갖추느라 몸이 둔해진다. 하지만 여름에는 무엇보다 몸이 가볍다. 반바지를 입어서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자외선에 그을리긴 해도 페달링에 전혀 걸리적 거리지 않는다. 단 5분의 페달링에도 온몸은 불타는 듯 뜨겁고, 땀은 비오 듯 떨어지지만 여름 라이딩은 생각보다 지옥은 아..

    표징

    며칠 사이에 봄꽃들이 가득 핀다. 떡볶이 먹으려고 들른 청풍쉼터에 노점트럭은 사라졌고 목련만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이번 주말에는 봄꽃 나들이가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개나리가 노랗게 꽃잎을 내어놓고, 벚꽃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목련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봄은 여전히 꽃과 함께 온다. 그리고 봄은 여전히 짧다. 봄은 사계절 중 분명한 하나가 아니라 겨울과 여름을 잇는 간절기가 되는 듯 하다.날씨가 더워지니 천변 자전거도로에는 날벌레 떼가 나타났다. 새까맣게 떼지어 있는 날벌레들을 빠른 속도로 뚫고 가면 후두두 소리내며 온몸에 부딪치고, 순식간에 스포츠글라스 렌즈 안에, 버프로 가린 얼굴에 들어온다. 집에 와서 옷을 벗으면 몇 마리가 방바닥에 힘없이 떨어진다.이것이 나에게는, 봄은 이미 가고..

    여름을 보내며

    겁나게 무더웠던 지난 여름을 돌이켜보니 드는 생각. 에어컨의 편의성을 누리며 여름을 버티긴 했지만, 에어컨에 감사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반면에, 구워 삶을 듯 내리쬐는 태양열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에, 땀에 흠뻑 젖은 내 몸에 불어오는 숲의 바람에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은 종종 했던 것 같다. 습기와 더위를 순식간에 날려주는 에어컨 바람에 마냥 기분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어도 여전히 무덥고, 숲 속에서 바람이 불어도 온몸의 끈적거림은 떨어지지 않지만 기분 만큼은 좋았다. 입을 틀어막아도 '아, 좋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조건 없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행복감. 그런 것이지 않을까. 집에 오는 길 선선한 밤바람에 감사하며 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