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할 수 없는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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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할 수 없는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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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도서관 별관 보존자료실에서 찍은 1987년 6월의 광주일보


1987년 6월 민주항쟁. 20년이 흘렀다.
오늘은 처음으로 정부의 공식 기념식도 열렸다.
정부와 언론들은 '6·10 민주항쟁'으로 통칭하는 분위기다.
항쟁이 그 날 하루에만 일어난 것도 아니고, 굳이 날짜를 특정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한다.
여하간 인민의 항쟁 역사가 정부 차원에서 기념된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국가가 공식적인 '역사'로 인정하는 것이고, 항쟁의 의의와 정신을 계승하는 일을 제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항쟁의 역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제도 바깥에서 제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들을 양보하거나 희생하는 것이고, 심지어 빼앗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5·18민중항쟁이 '국가기념'의 대상이 되면서 겪은 일들을 보면, 이러한 우려가 단순히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5·18은 어느 순간부터 '항쟁의 정신'을 슬그머니 놓아버리고 '인권'의 장으로 탈바꿈되면서 세련되고, 묘한 품위를 쌓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학살자와 야합하고 대통령이 된 김영삼씨에게 5·18의 이름으로 '감사패'를 주는 불상사(!)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까닭으로, 국가가 기념하는 6월 민주항쟁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한다는 이 국가는 바로 한달 뒤에 들불처럼 일어난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기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6월 민주항쟁에 대한 이 국가의 '기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 국가가 '기념'하는 민주주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