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고마운 사람들

첫 직장을 그만 둔 이후 내가 했던 일들은 거의 대부분 주변 지인들의 제안과 알선 덕분이었다. 첫 직장은 내 힘으로 들어가서 내 발로 나왔다. 그리고 첫 직장을 그만 두게 된 계기부터 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돈벌이들은 다 남들 덕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나는 순전히 백수로만 지냈던 시절은 거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꿈으로 삼았던 신문사 공채를 준비했고, 낙방하자 바로 첫 직장을 구했다. 어느날 지인 A가 모 종합일간지 지역주재기자로 나를 추천해주겠다 하였는데, 권한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기회는 날아갔다. 그 즈음 지인 B의 알선으로 다른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을 그만 두고 역시 지인 C의 추천을 받고 지원한 모 신문사에 최종합격하였으나, 뭔놈의 배짱이었는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교육대학원 입학시험에 응시하고 3년간 대학원을 다녔다. 대학원을 다닐 때에도 지인들 덕분에 심심치 않게 돈벌이를 하면서 생활비와 등록금을 대부분 충당할 수 있었다.
2007년 첫 임용시험에 떨어지고, 2008년 2월 대학원을 졸업했다. 어찌 되었든 돈은 벌어야 할 상황이었다. 이 때 지인 D가 괜찮은 자리를 권유했다. 그 즈음 또 다른 지인 E가 다른 자리를 추천했다. 엉겁결에 일자리를 고르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후자의 자리를 선택하고 최종합격도 하였다. 그러나 한달을 채우지 않고 그만 두었다. 임용시험에 대한 미련이 쉽게 거둬지지 않았다.
열공의 기운을 불태우던 2008년 9월, 추석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두달 여간 몸과 마음 황폐화. 2008년 11월 두번째 임용시험 낙방.
모 공기업에 다니는 지인 F의 권유를 받고, 2009년 4월부터 청년인턴으로 놀면서 용돈 받기. 7월에 그만 두고, 모은 돈으로 다시 임용시험 준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지인들의 제안과 알선이 들어온다.
외국에 나가 있는 선배까지 내 일자리를 알아봐준다. 어떤 선배는 모 신문사에 자리를 봐주려고 한다. 또 다른 선배는 자전거 관련 일로 나에게 바람을 넣고, 어떤 지인은 선거를 앞두고 '도와달라'며 손을 내민다. 한 선배는 카메라로 나를 꼬드긴다. 심지어 몇몇은 은근히 내가 임용시험에 떨어지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내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사람도 있고, 내 능력(뭔데?)이 필요해서 그러는 사람도 있으며,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사람도 있다. 세 가지 모두가 이유인 사람도 있다. 어쨌든 고마운 사람들이고 언젠가는 꼭 보답해야 할 사람들이다. 또 지인들이 제안하는 일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이 많은 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학교 선생님인데, 이건 아무도 알아봐주지도 않고, 그럴 능력도 없다는 게 몹시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ㅎㅎㅎ

오늘 점심식사와 커피를 얻어 먹으면서 잔뜩 바람 주입 당하고 왔다.
"일단, 공부는 열심히 해. 일단." 그러시더라. 여기서 방점은 당연히 '일단'에 찍혀 있는 거다. 일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