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임 리셋

“내 생각엔….” 저우치가 말했다. “당신과 나는 같은 운명인 것 같아요. 우린 모두 상대방의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죠.”
안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만약 어느날 그가 당신을 잃는다면, 그는 마침내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해하게 되겠죠. 지나간 잘못을 아파하며 뉘우칠 거고. 그러고는 그가 다음 여자를 만날 때는 더 나아지는 거예요. 그는 그녀와 결혼할 거고, 아주 좋은 남편이 되겠죠.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당신이 있을 거예요….”
“그럼 그 부인은 어떻게 그런 운명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사실 그의 부인도 좋은 운명은 아니에요. 그녀는 결혼하지만. 사랑은 얻을 수 없을 테니까. 그 남자는 자신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죠. 솔직히 난 그의 부인이 아주 운이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다만 화학 실험의 ‘대조표’일 뿐이죠. 단지 그의 회상의 도구일 뿐이에요!”
“정말 그럴까요….”
“그러니까 생각해봐요.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가 되는 것도 좋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그들이 마음속으로 영원히 날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게 나한테 좋은 점이 뭐가 있어요?”
“물론 좋죠. 당신은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영원히 감사하고 그리워하면서 아마 영원히 이별할 수 없는 대상이 될 거예요. 그 사람들 마음속에서 영원히 함께 있을 때의 젊고 아름다운 대상으로 남겠죠. 아내들처럼 함께 늙지 않을 거예요.”
“그건 거의….” 안안은 이마 앞으로 늘어진 머리칼을 쓴웃음을 지으며 불어 올렸다. “당신도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가 되어본 적이 있나요?”
“난 프로죠!”
“당신의 남자친구들도 모두 바람둥이였나요?”
“아뇨. 아뇨. 그들은 모두 착실했어요.”
“그런데 왜 헤어졌죠?”
“아주 많은 이유가 있었죠. 어떤 사람은 내가 그들에게 너무 잘 해주고 너무 스트레스를 줬다고 했죠. 어떤 사람은 내가 스카우트 단원처럼 너무 지루한 게 싫다고 했어요.”
“스카우트 단원이었어요?”
저우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 스카우트에 들었나요?”
“아뇨. 난 불량소녀였다고 할 수 있죠.”
“스카우트 단원과 불량소녀가 감정적으로는 마찬가지로 서러운 신세가 될 줄은 몰랐네요. 아, 이 세상의 남자들은 도대체 무슨 병이 있는 걸까?”
저우치는 백을 열고 안에서 입사의 크림을 꺼냈다. “이거 당신 줄게요.”
“‘타임 리셋’?” 안안이 물었다.
“모두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남자들이 모두 이렇게 형편없으니, 우린 몇 병을 쓸지 모르겠네요!”

-왕원화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중-

은희경의 문장배달이 도착했다. 요즘 읽는 게 뜸 했는데 제목에 확 끌려서 일단 클릭. 역시 제목은 섹시하고 봐야 하는 거다. ㅋ

위 글을 읽으면서 왕원화는 분명히 여자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대만의 작가 왕원화는 남성이다. 이 사람이 정말 남자가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여성을 잘 아는 것 같다. 남성인 내가 보기에도. ㅎㅎ

여하간 위의 내용에서 '여자'를 '남자'로 바꿔서 읽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남자가 있다면 이런 여자도 있을테니. 사람이 몇가지 유형으로 규정될 수 없듯이, 관계가 특정한 형태로 결론지어 질 수 없듯이, 사랑이라는 문제도 뭐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그런 거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얻고 이별하는 일도 있을 거고, 사랑 대신 결혼을 얻는 일도 있을 거고, 둘 다 얻는 횡재도 있을 거고, 사랑이든 결혼이든 이별이든 흐리멍텅한 일도 있을 거고. 가능한 경우야 셀 수 없다.
몰랐던 가치들은, 언제나 가지고 있을 때보다는 잃어버렸을 때 명징하게 드러난다. 사랑할 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은 이별 후에 하나씩 이해되는 법이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일은 흔하지 않다. 물론 시작은 할 수 있을 거다. '다시' 시작하는 것인지, '새로' 시작하는 것인지의 차이가 있겠다. 아니면 '다시 새로'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랑에서 배운 것은 공유될 수 있을지 모르나, 이별 이후의 성과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