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끼 이명박

1.
대개 좌파들은 인간의 개별적 변화보다는 사회구조의 변혁을 강조한다. 자유주의자나 우파가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믿는다면, 사회주의자나 좌파는 '세상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러나 그래가지고서는 나도 변할 수 없고, 세상도 달라지지 않는다. 김규항의 말대로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본디 하나'다.
지난 몇년간 어떤 조직적 활동도 배제한 채 극히 개인적 삶을 살아와서일까. 요즘엔 사회구조보다는 '개인'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

2.
이명박이 '건설'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 나는 이명박을 반대하고 혐오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무서워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이명박을 반대하면서도 이명박을 닮아가고 있고, 이명박이 원하는대로 살고 있다. '현실이 어쩔 수 없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우리는 새끼 이명박이 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한다.

"내가 명색이 386이니, 공부는 못 했어도 책은 많이 읽었다. 그런데, 내 아들은 좋은 대학만 다니지 정말 너무 무식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얼마 전, '너 용산사태는 아냐?' 그랬더니 답이 끝내줬다. '가난한 사람들 불타 죽은 거? 그러니 돈을 많이 벌어야 돼', 그러더라."


386출신 특목고입시 전문학원장의 말이다. 나는 이명박이 혓바닥 낼름거리며 내뱉는 말보다는 이런 말이 훨씬 더 무섭다.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이명박뿐이 아니다. 이명박이 벌리고 있는 아가리 속으로 친히 아이들을 밀어넣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는 이명박을 향해 마구 손가락질 하면서도, 다른 한손으로는 이명박을 향해 아이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나는 이명박을 욕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이명박스러움을 조금씩 떨쳐내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길이라고 믿는다. 한국의 교육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기의 자식을 무자비한 경쟁체제에 몰아넣고 있는 코앞의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이명박을 이길 수 없다.
단언컨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명박에 대한 정교하고 강력한 비판이나 반대보다는 자기 삶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잔혹한 경쟁체제에서 '내 자식만은!'이라는 초현실적인 믿음으로 아이와 자신의 현재를 저당잡히는 부모들. 아이들의 미래에 아파트와 정규직과 재테크를 안겨주고야 말겠다는 부모된 자들의 어긋난 자식사랑의 욕망이 그 자식을, 부모와 자식간의 애틋한 관계를, 그리고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을 팔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 영혼을 팔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짧은 성취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을 키워낼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 스스로 새끼 이명박이 되고, 수많은 새끼 이명박들을 키워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명박은 언제든지 재생산될 것이다. 우리 손으로 키운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우리 스스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