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형제 합헌 유감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MBC에서 뉴스특보로 생중계를 하길래 내심 '이거 위헌 결정 나는 거 아냐'라고 기대했는데. 기자들이 위헌 결정에 대한 모종의 정보를 얻었으니까 생중계까지 하는 거 아니냐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아니다. 기자들도 싱거웠던지 대충 합헌 결정 소식만 전하고 생중계 끝.
사형제 존폐에 대한 토론이나 법리 논쟁은 사실 매우 싱겁다. 양쪽의 논거는 너무 뻔한 말들이라서. 이건 팩트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어떤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를 들면, 사형제가 범죄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그렇다. 외국의 통계만 들이대도 그냥 박살나는 논거다. 미국 사례만 봐도 개구라가 되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냥 믿는다. 왠지 그럴 것 같으니까.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의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과연 평소에 사형제를 두려워 했겠냐. 사형제가 범죄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건, 범죄 저지를 일 거의 없는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나 가능한 상식이자 신념인 거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면 사형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평범한 사람들이나 갖는 공포라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상식과 신념이 흉악범에게는 통할 일이 없다는 거지.

여하간 윤리적 명분도 없고, 실효도 없는 사형제가 이번에도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다니 유감스럽다.

1996년 7대2로 합헌 결정. 2010년 5대4로 합헌 결정.
사형제 폐지에 필요한 것은 토론이나 강력한 논거라기보다는 시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