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
opinion

좋은 사진

photo by VJ 최.

자가용 없는 집이 거의 없듯이(우리 집엔 없다. 흠...) 한 집에 디카 하나 정도는 갖추고 사는 세상이 되었으나, 넘치는 건 사진이 아니라 이미지다.
디카의 대중화는 사진의 대중화보다는 이미지의 홍수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내 생각이다. 뭐 사진과 이미지는 과연 다른 것이냐 하는 건 매우 중요한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사진은 이미지와는 다른 고유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건 분명하다. 아직까지는.

내가 지인들의 사진을 찍고, 여유 있을 때 인화해서 선물하는 까닭은 스토리텔링을 원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스토리텔링이 산업이나 마케팅 영역에서 주로 회자되지만, 원래 스토리텔링은 말 그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사진은 순간의 정지된 화상이다. 좋은 사진은 아름다운 구도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장의 사진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때,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스토리텔링이 되는 사진을 좋아한다.
남들이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아! 이 때 어쩌고 저쩌고 했었지', '어라, 내가 왜 이러고 있냐?' 따위의 말들이 나올 때 기분이 좋다. 인화해준 사진들을 보면서 눈감은 사진 찍었다고 뭐라고 하는 것보다 더 속상한 일은 별 말 없이 사진들을 넘기는 것이다.

요즘엔 '이쁜 이미지=좋은 사진'로 통하니까, 눈 감은 사진은 쉽게 버려진다. 하지만 눈 감은 사진은 실패작도 아니고 안 좋은 사진인 것도 아니다. 사진 속 인물이 눈 감았으면 어떠랴. 그 장면도 우리에게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해주는데. 단체 사진에서 홀로 눈감았다고 해서 사진을 망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표정하고 획일적인 단체사진을 보다가 눈 감은 사람을 발견하고 웃을 수도 있는 거다. 딱히 말할 게 없는 심심한 사진에서 작은 웃음을 줄 수 있는 좋은 사진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이건 직업사진가에게는 그다지 해당되지 않는다. 직업사진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정확한 사진이니까.
직업사진가가 아닌 나는 눈 감은 사진, 이상한 표정이 찍힌 사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찍힌 사진, 흔들린 사진, 핀이 안 맞은 사진도 쉽게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꼭 써먹을 날이 오리라 하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