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노동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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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와 노동자의 죽음



3년 전 3월 6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동료였던 이숙영씨, 같은 생산라인의 엔지니어였던 황민웅씨도 백혈병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반도체 산업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라는 단체가 꾸려져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건강권 침해에 대한 조사와 산재인정을 위한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피해자 현황 및 작업환경(방사선, 화학물질등)관련 제보들 보기 (반올림에서 정리)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언론이 보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전혀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피해 노동자 유족들에 따르면, 꽤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해갔고, 방송국 카메라도 여러 번 촬영해갔다고 한다. MBC의 '피디수첩',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취재를 했으나 보도는 없었다. 삼성의 추악한 힘이다. 실제 보도된 경우는 프레시안이나 민중의 소리, 한겨레 등 소수의 언론 뿐이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데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에는 수많은 반도체가 사용된다. 반도체가 갖는 첨단이라는 이미지는 제조공정에서 온갖 독성물질들이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은폐한다.

반도체 공장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 반도체 공장 내부는 청정구역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노동자보다는 반도체를 위한 청정구역이 아닐까.


아시아노동감시센터(AMRC)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피해는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 대만, 필리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전세계 전자제품의 40%를 생산한다고 한다. 이윤추구가 유일한 존재목적인 다국적 기업들에게 싼값에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터무니 없이 저급한 사회들이니까 이 곳에 공장을 돌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AMRC의 증언이다.
"IT부문의 산업재해는 '보이지 않는 살인자'로 불려지며 4~5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돼 입증이 쉽지 않을뿐더러 고용 계약도 없어 다치면 바로 버려진다"
"중국과 대만에서 아이폰의 평면 모니터를 만드는 한 회사는 필수 보호 장비를 제공하지 않아 수 백 명의 노동자가 헥산 중독을 일으켰고 18세의 어린 여성 노동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이 휴일도 없이 매일 12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리고 어린 여성들은 성폭행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삼성 입사 후 OJT 중 방문한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겪은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여성 생산직, 남성 생산직이 컨베이어 벨트에 예속돼 두 시간에 10분씩 휴식하면서 꼼짝 없이 일하는 모습을 봤는데 혹시 배탈이 나더라도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정도였다. 또 복도는 전등이 희미하여 앞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화장실에는 손 닦는 수건이 없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손수건으로 닦도록 돼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깨끗한 공장 풍경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일류기업이라는 삼성 직원들이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구나 싶었다.

우리의 존재는 돈을 주고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로 그쳐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고, 노동자들과 어울리며, 자식들을 노동자로 키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인생의 8할을 소비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살아간다.

군복무 시절 나는 병장계급을 달고 나서부터 신병이 들어올 때마다 뻘 짓을 좀 한 적이 있다. 내무반에서 신병을 옆에 앉혀 놓고 의식화 교육(?)을 했다.
신병에게 플라스틱 물컵을 보여주며 물었다.
"야, 신병. 이 컵은 뭘로 만들었냐?"
열이면 열, 모든 신병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습니다아!"
나는 녀석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이건 노동으로 만든거야."

연대라는 게 꼭 함께 어깨 걸고 싸우는 것만 뜻하거나 운동권의 전유물인 건 아니다. 자기 삶의 현장에서 노동의 존재와 가치를 성실하게 이해하는 것도 연대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연대의 기초이자 시작이 아닐까.
소비자의 권리를 존중받고 고객으로서 합당한 대접을 받고 싶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소비자가 되고 고객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의 소비가 누군가의 노동을 부당하게 착취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다른 소비를 모색해야 한다. 내가 타인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그 노동이 정당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데 힘을 보탤수록 세상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