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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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충만'


지난 2006년 봄날, 서울 성북동 길상사 법회에서 법정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정한 행복은 이 다음에 이뤄야 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좋은 가구, 권력 등 이런 욕망들은 막상 갖게 되면 한동안 행복할진 모르지만 머지않아 시들해집니다. 이들은 덧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자신의 책을 출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남기셨다는 기사를 보고, 빠르게 책장을 훑었다. 나에게도 법정 스님 책이 한권 쯤 있을텐데 하며. 다행이다. 한권 있긴 하다.
1989년에 샘터에서 출판한 '텅빈 충만'. 20년이 넘는 세월 탓에 오래된 종이 특유의 냄새가 풀풀 난다. 군대 시절 나는 매주 종교행사 때마다 불교를 골랐다. 교회에서 주는 초코파이보다는 절에서 주는 떡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 답답한 군화를 벗고 온돌방에 엉덩이 깔고 앉을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어쨌든 '텅빈 충만'이라는 책은 부대 안에 있는 절에서 슬쩍 들고 나온 거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말씀하셨으나, 나는 절도까지 하면서 책을 소유하고 말았다는 어둠의 이야기. ㅋ
스님은 가셨으나, 영혼이 담긴 말씀은 남아, 비워서 충만한 삶을 일러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