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긴급출동 소방차 앞에서 문자질 하는 운전자

살다보면 열받는 장면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나의 이익이 직접 침해받은 것도 아니고, 나의 취향에 거슬리는 것도 아니며, 나를 귀찮게 구는 것도 아닌데도 화딱지 나는 일.
오늘 보도를 걷고 있는데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보니까 소방차가 사이렌을 쩌렁쩌렁 울리며 긴급 출동하는 중이다. 앞에 다른 차량들이 있어서 경적까지 울리며 앞으로 나가려고 애를 쓴다. 이럴 때 한국사회에서 아주 익숙한 풍경은 이렇다. 긴급차량이 가거나 말거나 대부분의 자동차는 여느 때처럼 제 갈길 고집한다. 교차로에서 자기 신호 떨어지면 기어이 진입하신다. 긴급차량이 오거나 말거나 이럴 땐 교통신호 꼬박꼬박 지켜주시는 센스. 이거 아주 고약한 짓이다. 누군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수 있고, 누군가의 소중한 집이 불타고 있을 수도 있다.

다시 오늘의 풍경으로 돌아가서.
뒤에서 소방차가 사이렌과 경적을 울리고 있는데, 맨 앞의 운전자가 뭐 하고 있었는지 아냐? 핸들 위에 살포시 핸드폰 올려 놓고 문자질 하면서 느긋하게 운전 중이다. 차창이 모두 내려져 있었으니 소리 못들었다고 할 상황도 아닌데. 닫혀 있다 해도 그 시끌벅쩍한 소리가 안 들릴 리 만무하고. 솔직히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어찌나 화가 나든지. 마음 같아선 멱살이라도 잡고 끌어내고 싶더라.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 해도 긴급차량보다 문자질이 더 중요할 수 있는 거냐.
타인을 도우면서 살지는 못하더라도 방해는 안해야 되는 거 아니냐. 가짜로 출동하는 거니까 양보할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소리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니들이 어떻게 아냐. 진짜라면 어떡하려고? 남의 목숨이 걸린 일로 가짜냐 진짜냐 따질 권리, 누구에게도 없다.

영국 도로에서 긴급차량이 다가오면 다른 자동차들이 어떻게 하는지 한번 봐라.


영국의 도로는 대부분 정말 좁다. 저렇게 좁은 도로에서도 앰뷸런스에 길을 터주기 위해 인도 턱을 넘는다.(한국에서는 주차를 위해 인도로 올라서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공간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운전자는 조금이라도 차를 움직여서 길을 만들어준다. 돈 좀 번다고 선진국 되는 거 아니다. 배려와 존중, 연대가 특별하고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되어야 선진국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거다.

제발 인간은 못되도 괴물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