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만 하면

아이는 '어른만 되면' 하는 생각으로 살고, 고등학생은 '대학만 가면'이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실업자는 '취업만 하면' 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수험생은 '합격만 하면' 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문다. 천대받는 보행자와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승용차만 사면'하는 생각으로 오늘도 참는다.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내집마련만 하면' 하고 설움을 삼킨다. 나이가 꽉찬 미혼은 '결혼만 하면' 하는 생각으로 오늘을 보내고, 기혼자들은 '자식만 낳으면' 하고 산다. 자식을 키운 사람들은 '손주만 보면' 하고 노년을 맞이한다. 인생을 '~만 하면'으로 나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빡 친다.
언젠가 친구 M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로 난상토론(?)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개나 소나 행복으로 사는 거 아니냐고 했고, M은 행복은 개뿔(그러니까 M은 행복은 없다는 무지막지한 말을 했다), 인간은 성취감 때문에 산다고 했다. 나는 성취감도 행복의 일종이지 않겠냐고 했지만, M은 성취감과 행복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했다. 나와 M의 토론은 항상 의견의 합치나 이견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래 난 너와 이만큼이나 다르다'는 걸 입증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종결된다.
어쨌거나 '~만 하면'에 대하여 생각하다보니, 어떤 면에선 M의 주장에 수긍할 만 하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건 '~만 하면'의 성취보다는 무엇을 위해서 '~'을 하는가.이다라고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만 하면'을 해냈다고 해서 이후의 삶이 탄탄대로인 것도 아니고, 또다른 벽과 고단함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만 하면'을 생각하게 되고. 급기야 인생은 무상이로다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ㅋ
돌이켜보니, 나는 '~만 하면'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만 하면' 진흙탕 인생이 장밋빛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정글 같은 세상이 여민동락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 삶도 그렇고 세상사도 그렇다. 진보신당을 지지하고 집권하기도 바란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만 하면', 노동자 세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승용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아지는 날이 오는 것도 아니다.
'~만 하면' 그냥 좀 나아지거나 아니면 좀 덜 나빠지는 것일 뿐이다. 개인의 삶이나 세상사나 '~만 하면' 하는 식으로 확 달라지는 건 없다.

*블로그에 등장하는 지인들을 알파벳 이니셜로 표기하는데, '그 사람 모모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추정하지 마시라. 내가 표기하는 이니셜은 그냥 무작위다. 한 때 A로 통일해서 표기했었는데, 동일인물인 줄 알고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길래 그 뒤론 내맘대로 알파벳 가져다 쓰는 거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