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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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정 1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듣는 것이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데 대단한 지혜나 학습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곧잘 잊는다. 몰라서가 아니라 그게 편해서다. 보이는대로 단정하고 들리는대로 결론내는 일은 무척 쉽다. 뇌과학에서는 인간의 뇌는 최대한 빨리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해 직감에 의존한다고도 한다만. 저 녀석이 내편인지 아닌지, 그러니까 나한테 해가 될 놈인지 이로울 놈인지를 빨리 판단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 이러한 뇌의 전략에 속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성찰과 반문'이라고 뇌과학자 장동선은 말한다만. 그건 그렇고.


우리는 상대방의 속사정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무관심하면서, 겉으로 보고 듣는 것만으로 이러저러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러고나서 돌아서면 그 단정조차 금새 잊어버린다는 것.

진심으로 상대방의 속사정을 걱정하는 사람은 쉽게 질문하지 못하고 참고 또 참으면서 기다린다. 대단한 관심이라도 있는 척 질문하고 간섭하기를 서슴치 않는 이들의 진짜 관심사는 상대방의 속사정이 아니라, 자신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믿는 행동 자체이거나 호기심 충족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상대방의 평화가 아니라, 자신이 개입하고 판단해서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은 것이다. 입장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입장에 개입하려는 것.

주변의 누군가 당신에게 무관심하다면 서운해 하지 말 것. 그는 당신에게 별 의미 없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당신의 속사정을 걱정하고 배려하면서 신중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진실된 관심은 질문이 아니라 침묵 속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 나의 잠정적 결론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침묵을 무관심으로 오해하는 순간이 훨씬 많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간혹 소중한 관계를 놓친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속사정을 헤아리고 신중하게 말을 거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일은 어렵다. 어렵지만 못할 것도 아니다.

다행히도 관심과 개입을 구분하는 방법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설렘과 안도감, 깨달음을 준다면 그것은 관심이고, 불편하고 생뚱맞다면 일방적인 개입이 맞다. 그리고 진실된 관심은 결국 의도하든 안하든 당신의 삶에 개입할 것이고, 그것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