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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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2

ⓒ 한겨레 / 김봉규 선임기자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참사'라고 했다. 6명이 생목숨을 잃었고, 매년 이 즈음 사람들은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9년째다. 9년 동안 무엇이 해결되었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재개발사업은 '도시재생사업'으로, '뉴타운'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강제철거와 약탈식 재개발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신화와 가난한 사람의 터전을 짓밟고 뻗어 올라가는 건물을 부럽게 바라보는 세태는 오히려 더 견고해지지 않았는가. 당시 진압작전의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일본 오사카 총영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했고 드디어(!)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20대 국회의원(자유한국당)이 되었다. 

지난 9년간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서 진전시키지 못한 용산참사의 진상규명은 이제서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타인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과 그 사회의 '인간다움'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자기보존과 이익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정신과 물질을 쏟도록 만드는 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인을 이기는 스펙을 위해 타인에 대한 공감을 외면하고 포기해도 껄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때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는다.

홍세화 선생님은 우리가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생각'이라는 명사를 '생각하다'라는 동사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생각하는 '과정'은 없고 생각이라는 '결과'만 있다. '결과'만 있는 생각은 고집과 편향의 종합이다. '재개발은 낙후된 도심에 불가피한 것이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며, 철거민들은 더 큰 보상금을 요구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고, 재개발은 공공의 이익이며, 그래서 몇몇 철거민의 희생과 강제철거는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권력과 보수언론의 '결과'를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 없이 수용한 것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간결한 한마디는 용산 참사의 비극을 역설한다. 사람은 그 자체로 존재를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용산의 사람들은 저렇게 절규해야 했다. 절규했지만,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배제당했다. 비극은 그렇게 사람을 배제하는 순간 잉태했다.

권력의 죄를 처벌하지 않으면 참사는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인간다움을 포기하면 참사는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용산 참사 당시 남일당 옥상 농성의 생존자 5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영화 '공동정범'이 1월 25일 광주극장에서 개봉한다. 공동정범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살이를 한 철거민 5명의 고통과 상처, 갈등 그리고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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