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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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위하여

2018년 한해동안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개헌이지 않을까. 아직 연초라서 그런지 개헌을 하긴 하는건가 싶은 미적지근한 분위기이긴 하다만.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을 언급하기도 했고 앞으로 점점 분위기가 달아오르긴 할거다.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할건지 다음에 할건지 여의도의 진흙탕 싸움이 예상되긴 한다만, 어쨌든 개헌은 할 것이다.

개헌 한다고 세상이 갑자기 장밋빛이 되는건 아니다만, 국가와 사회의 기본 원칙을 다듬고, 법률 이하 제도와 규정을 강제하는 최상위법이라는 면에서 개헌은 중대사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큰 그림 완성하기 전에 우리의 요구를 마구잡이로 내던져야 하는 거 아닌가. 개헌은 기회다. 단순히 헌법을 고치는 선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와 국가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지난한 일이다. 개헌은 우리 모두 철학자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교사가 되며 학생이 되어야 하는 버라이어티한 이벤트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의 헌법은 1948년 제헌 이후 9번 개헌을 했다.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이나 박정희의 유신 개헌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기 뭐하고. 진정한 의미의 개헌은 1987년 개헌이 유일하지 않을까. 요즘 뜨고 있는 영화 '1987'의 故박종철과 故이한열의 죽음으로 촉발된 6월항쟁의 결과물이 바로 여야합의(라고 쓰고 몇몇 엘리트정치인들의 담합이라고 읽자)와 국민투표로 결정된 1987년 개헌이다. 비로소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직선제가 다시 헌법에 들어온거다. 이 헌법이 지금까지 31년째 우리가 쓰고 있는 거다.

11번째 헌법을 위해 몇 가지 단상들을 툭 던져본다.


1. 개헌만민공동회

국가적 버라이어티 이벤트를 위한 만민공동회가 필요하다. 개헌은 우리의 삶은 물론 후세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의 요구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개헌의 주체라는 것을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이 벌벌 떨도록 알려줘야 한다. 지역별로 동네별로 위원회를 조직해도 좋고, 인터넷에서 SNS에서 마구 떠들어도 좋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우리의 요구를 떠들어댈 수 있다면 방식이나 모양새는 상관 없다. 저들이 우리를 진심으로 대의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직접 떠들어야 듣는 척이라도 할 것 아닌가. 1987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떠들어대지 않았다면 우리는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경험을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뿐인가. 박근혜씨가 아직도 한국의 대통령으로 남아있는 끔찍한 일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떠들 수 있는 난장이 필요하다.


2. '국민'을 '인민'으로, 아니면 '사람'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2항이다. '국민'이 2번이나 들어간 제1조를 시작으로 헌법에는 '국민'이 총 66번 나온다. 혹시나 해서 '인간'을 검색해보니 3번 나오고, '사람'은 아예 없다. '인민'은 당연히 없을테니 찾아보지도 않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에서는 '인민'이라는 말이 쓰였다. 1948년 제헌헌법 초안에도 '인민'이 쓰였는데, 일부 의원들이 반대해서 '국민'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윤치영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그분 맞다. 당시 '인민'이라는 말은 사회주의 세력이 주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제외되었고 헌법에서 영원히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헌법도 '인민'으로 시작하는데 말이다. 아래가 유명한 미국 헌법의 첫 구절이다. 'We the people' 그러니까 '우리 인민은' 이렇게 시작한다.

국민국가라는 이데올로기를 탈피하는 것이 요즘 글로벌 스탠다드 아닌가. 아래 표는 경향신문에서 가져왔다.

 

한국사회도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한 국가의 기본원리와 가치를 담고 있는 헌법의 위상을 생각하면 '국민'은 제한적이다. 국적과 민족 개념에서 벗어나 좀더 확장된 의미로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국민'을 꼭 써야 할 조항은 어쩔 수 없더라도 기본권 조항에서는 '사람'을 쓰면 좀 멋있을 것 같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 -> "모든 사람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

나는 '인민'을 추천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무리일테니 '사람'이 낫겠다.


3.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흔한 사회에서 점점 벌어지는 임금격차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저해하고, 온갖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핵심요인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고용불안정만 해소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임금격차가 불평등과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더 큰 요인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임금격차를 줄이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기본 원칙을 선언하여 하위 법령 등을 손보고 정책을 마련하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명시되어 있긴 하다만, 점점 악화되는 불평등한 현실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헌법 조문으로 격상하여 노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노동의 가치를 복원하는 원칙 중 하나로 세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