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

    혼자서 가라

    풍족한 생활이란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소비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면 '좋은 삶'을 고민하는 시간은 희소해진다. 공동체가 소멸되어가는 대중사회에서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우리의 삶을 규정한지 오래다. 하지만 소비로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으로는 행복을 유지하기 어렵고 스스로 내면을 느낄 수 없다. 소비는 얼핏 나를 위한 행위인 듯 보이지만, 사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이타적 행위다. 욕심 나는 내 삶과 일상에 큰 불만이 없다. 하지만 갈수록 진중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같이 노는 사람들은 있어도, 함께 생각을 나누고 내면을 보여주며 때로는 격한 논쟁도 불사하는 그런 관계를 새로 맺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가끔 외로움과 권태를 느끼는 까닭이다...

    욕심

    "... 사회적으로 사람을 인정하는 데 제일 쉽게 판단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소비생활입니다. 마을 공동체 안에서는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미리 다 알고 있으니까 관계가 없지만, 대중사회가 되면서 길에서 잠깐 스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판단할 기준이 그것밖에 없어요. 자기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은 스스로의 내면적인 느낌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 (녹색평론 2008년 1-2월호 신년대담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p.33) 누군가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는 배경에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할 것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 것은 그이와의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꾸밈만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