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그 길에서

    윤리

    "실제로 자동차라는 물체는 대상에 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실감을 상당히 빼앗아버린다. 자동차의 외피를 이루고 있는 얼마간의 고철덩어리와 바퀴라는 매개물은 대상과의 접촉을 가로막고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가 달리는 동안 창 밖의 공간은 살해되고, 그 공간 속에서 살해되는 존재들에 대해서 자기도 모르게 무심해진다. 맨발로는 차마 밟고 지나갈 수 없는 생명체의 주검을 바퀴로는 얼마든지, 아무 감각 없이, 뭉개고 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실물감의 둔화나 마비가 곧 윤리적인 감각의 둔화로 이어진다는 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단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서면 프로그래밍된 기계 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누구도 그 무의식적인 살해의 속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2008년 5-6월호 통..

    <어느날 그 길에서>-도로의 폭력성 고발

    나는 동물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로드킬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를 꼭 보고 싶었던 까닭은 도로에 투영돼 있는 인간문명의 폭력성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죽임을 당한 동물들의 수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연구팀 3명이 120km 길이의 도로에서 3년여간 확인한 로드킬은 5천건이 훨씬 넘는다. 전국의 고속도로 3000km를 이틀 동안 다니면서 발견한 로드킬은 무려 1천여건. 한국의 도로가 총연장 10만km에 달한다고 하니 확인되지 않은 로드킬의 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황윤 감독은 평소 보고 싶었던 동물 친구들을 도로에서 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을 빼앗긴 뒤였다.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어 의식불명에 빠진 삵을 연구팀이 발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