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투표는 좋은 거다.

오늘 재·보궐 선거가 있다.
아침에 아버지가 나가면서 하는 말.
"옆집 아줌마한테 투표 좀 해줘라."
지난 해 5·31지방선거 때 기초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는데 이번에 다시 나선 모양이다.
아침부터 분란(?)을 만들기는 싫어서 그러겠다고는 했다.
그러고나서 이번 재·보궐 선거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해봤다.
내가 사는 선거구에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없다.

선택지는 세 가지다.
1. 그나마 나은 후보에게 투표를 한다.(뭐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만)
2. 투표는 하되 무기표한다.
3. 그냥 쌩 깐다.

결국 나는 2번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일단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올바르다고 판단했기 때문. 선거를 통해 집권하려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써 투표율 제고에 보탬이 되는 것도 정당활동의 일환이다.
그리고 앞으로 '민주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는 예비 사회과 교사로써 투표 참여는 기본 자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침에 아버지에게 투표하겠다고 대답을 했기 때문에 비록 옆집 아주머니에게 투표하지는 않았지만 투표에는 참가해야 했다.

위의 세 가지 이유로 나는 무기표로 투표를 했다.

나는 어진간 하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투표 거부나 정치 무관심도 일종의 정치적 의사표명이라는 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또 투표를 하든 말든 그것은 분명히 개인의 자유이다.(그래서 나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도입하고 있는 강제투표제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투표참여를 권장한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인민이 제도정치권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투표이기 때문이다. 한줌의 지배계급들은 자본과 미디어, 권력 같은 메카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꼭 투표가 아니어도 자기들의 이해를 관철시킬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은 선거과정에 철두철미하게 개입하고 기어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세상의 주인인 인민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지 못한다. 그나마 효과적인 수단인 투표조차 나몰라라 한다. 물론 이것은 정치를 인민의 생활영역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분리시켜버린 지배계급과 미디어가 공작한 결과다.

그리고 먹고 살 만한 사람들에게 선거의 결과는 크게 상관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그래서 이들은 선거일에 해외여행을 떠나고 골프장을 찾는다), 당장 먹고 살기 팍팍한 사람들에게는 누가 권력을 잡느냐가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오히려 후자의 사람들이 투표 참여에 더 소극적인 편이다. 절망감의 깊이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그래서 나는 각성된(?) 중산층이 빈민층과 연대하는 방편으로써 투표참여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투표는 인민이 자기 이익을 보호하고 요구할 수 있는 괜찮은 수단이다.
단, 자기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부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노동자는 또 그들 나름대로 각자의 이익에 따라서 지지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서민이 부자의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홍세화가 말했듯이 여전히 '존재를 배반하는' 투표행위가 주류인 것이다.
자기 존재에 기반한 투표. 계급투표야말로 가장 확실한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