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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을 바꾸는 5ㆍ18수업을 위하여

5ㆍ18민중항쟁 27주년 기념 <생생하고 다양한 5ㆍ18 수업사례 발표> 행사에 다녀왔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5ㆍ18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또 정신계승을 교육적으로 구체화하려는 노력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발표를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적어본다.

오늘 발표의 주제가 '수업사례'이기 때문에 실제 교수학습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꽤 근본적인 고민이 들었다. 5ㆍ18에 대하여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 관한 인지적 교육과 5ㆍ18의 정신을 생활화하도록 하는 정의적 교육이 그것. 물론 이 두 차원의 교육이 양자택일하거나 전혀 별개로 이뤄질 성질은 아니다. 오히려 긴밀하게 관련성을 가지면서 상호보완적 기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5ㆍ18 수업'의 목표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사는 '5ㆍ18 수업'을 통해 어떠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가?

우선 사회과 교육에서 5ㆍ18 수업의 목표를 생각해보자. 알다시피 사회과 교육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민주시민의 양성'이다. 사회과 교육은 타 교과보다는 정의적 측면에서의 교육적 변화를 더 많이 기대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과 교육에서 5ㆍ18수업은 학생들이 5ㆍ18 정신을 체화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5ㆍ18정신은 민주, 인권, 평화, 통일, 평등, 공동체 정신 등 무엇이든 좋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5ㆍ18 정신을 체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늘 발표자들은 '내면화'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학생들이 5ㆍ18을 내면화하도록 한다는 것. 5ㆍ18수업을 통해 5ㆍ18 정신이 학생의 의식 속에 의미있는 가치로서 자리매김하도록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나는 '내면화'보다는 '체화'라는 말로 교체해야 한다고 본다. '체화'는 몸에 익힌다는 것이다. 정신적 활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그 정신과 가치를 구현해내는 적극적 의미이다.)

5ㆍ18정신이 무엇보다 학교 생활 속에서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통일, 반전과 같은 가치들도 5ㆍ18 정신의 중요한 현재적 의미라고 할 수 있지만, 학생들의 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거대담론이다.

사회과 교육이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교과가 되지 못하고, 심지어 '암기과목'으로 전락한 이유는 교육과정의 내용과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는 실제 생활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학교에서는 민주주의와 평등, 개인의 자유 등을 가르치지만, 정작 학생들이 겪는 학교생활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불합리한 위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체계는 점수를 매겨서 학교를 서열화하고, 학생들을 줄세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기보다는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통제를 선택하는 데 익숙하다. '두발자유'를 위해 투쟁도 불사해야 하는 학생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개인의 자유를 실감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5ㆍ18수업이 5ㆍ18에 관한 일시적인 교수학습에 그치지 않고, 5ㆍ18정신을 학교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고민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생활지도의 측면에서 학생의 두발을 '관리'해야 한다면 일방적으로 단속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논의하여 두발규정의 필요성이 합의된다면 스스로 규정을 만들고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자율'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학교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사회과 교육에서 5ㆍ18수업은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하며 억압적인 학교체계에 대해서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문제제기 할 수 있고, 나아가 민주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5ㆍ18수업이 꼭 5ㆍ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내용을 중심으로 기획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5ㆍ18 주간에 학생들이 '두발자유'에 관한 토론회를 열도록 하는 것도 5ㆍ18 수업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5ㆍ18수업은 학생들이 느끼는 교육과정과 학교생활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교육활동의 연장선에서 사유될 필요가 있다.


*글로 정리해놓고 보니, 지나치게 앞서간 문제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약간의 무책임함마저 느껴져서 민망하기도 하다. 오늘 발표된 5ㆍ18수업사례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발전적인 5ㆍ18수업의 지향점에 관하여 개인적인 고민을 적은 것이라고 이해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