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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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실체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나 <습지생태보고서>를 본 사람들이라면 최규석의 만화가 파고드는 현실의 깊이에 가슴 서늘한 적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의 만화를 보면 도대체 얼마나 깊은 성찰과 고민과 학습을 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그의 만화를 볼 때면 늘 가슴이 서늘하다. 그는 어쩌자고 이렇게 정직하게 날 것 그대로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단 말인가!
얼마전 새 만화책 <100℃>가 나왔다. 일단 알라딘 보관함으로.

한겨레21은 시급 4천원짜리 워킹푸어의 노동과 생활을 기자가 직접 체험한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7,80년대에나 나올법한 '슬픈 노동'의 현장 르포가 2009년 시사주간지에 실려 있다. 아래는 최근 한겨레21에 실린 만화가 최규석의 일러스트레이션들이다.

이것이 바로 6월항쟁은 떠들썩하게 기념하면서도, 같은 해 여름에 벌어졌던 노동자 대투쟁은 철저하게 외면해온 대한민국 '민주화'의 뼈아픈 실체인 거다.


난 계약서를 쓰자마자 A사로 ‘배달’됐다. 함께 ‘을’이 되어 공장에 온 무리는 다른 인력회사에서 온 이들을 포함해 19명이었다. 이들은 통상 ‘용역’으로 불린다. 인력회사 관리들이 줄을 세웠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자 A사 생산부장이 와 사열해 있는 우리를 뭉텅뭉텅 갈랐다.


‘단순하다’는 ‘지겹다’와 통한다. 손에 익지 않을 경우 고통은 천천히 오밀조밀 전해지고, 손에 익으면 고통보다 더 큰 피곤함으로 잠이 쏟아진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은 공포만큼 이들에게 버거운 것도 없다. 지방대를 다니다 8월 초부터 일해온 24살 정원식(가명)씨는 “A타임에는 김태희를, B타임에는 전지현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부터가 온통 음흉, 불량한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경기 부천에서 공고를 나온 염철수(28·가명)씨는 “멍 때려야 시간이 간다”며 “그땐 완전 (자신이) 기계예요, 기계”라며 한숨을 쉰다. 실제 라인 속도는 목표량에 맞춰 반장이 자유롭게 조정한다. ‘멍 때린’ 채 라인의 노예가 된다. ‘의식’이 비집고 설 틈이 없다.


경기 수원 지역 공장에 다니는 40대의 김영순(여·가명)씨는 15년간 식당에서 일을 했다. 주방과 홀서빙을 오고 갔다. “정말 힘들었다.” 임계치를 넘어서자 공장으로 왔다. 1년6개월이 넘는다.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올 1월부터 야근조를 지원했다. 평균 130만~150만원을 번다. 택시기사인 남편은 월 70만원을 벌어온다. 사실상 김씨가 생계를 책임진다. 저녁 8시30분부터 새벽 5시30분까지 일을 하고, 잔업으로 2시간을 더 한다. 하지만 잔업만 좀 줄어도 임금은 곤두박질친다. 지난 6월엔 83만3180원을 받았다. “어처구니없다.” 중학생 아들, 고등학생 딸이 있다. 저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