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고를 접다

프레시안은 변호사 김용철씨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와 관련된 릴레이 기고를 받고 있다. 나도 좀 할말이 있을 것 같아 기고를 작심하였으나, 접었다.
써놓고 보니 글이 마무리가 안된다. 뻔한 결론을 짓기도 뭐하고. 임팩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대충 정리해서 기고할 수도 있으나, 프레시안의 사회적 위신(?)도 고려해야 하고. 그래서 접었다.
솔직한 이유는 對 프레시안 기고전에서 2전 2승 기록인데, 3전 2승 1패로 만들고 싶진 않아서다. 1패보다는 전승 기록이 더 나으니까. ㅋ


지난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허경영씨는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공약들을 내세웠다. '결혼하면 신랑, 신부에게 각각 5천만원씩 지급', '출산시 양육비 3천만원 지급', '60세 이상 노인 전원에게 매월 건국수당 70만원 지급' 등 그가 내건 공약들은 파격적이고 황당했다. 하지만 허경영씨의 공약을 정부가 집행할 가치가 있는 정책으로 이해한 유권자보다는 넌센스로 웃어넘긴 유권자가 훨씬 더 많았다. 허경영씨를 정치인보다는 '허본좌'로 인식하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월등히 많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허경영씨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아픈 책이다. '한국의 대표기업', '일류기업'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심지어 '한국을 먹여 살린다'고 알려진 삼성(을 지배하는 이건희씨와 그 가신들)이 한국의 법과 상식, 윤리를 유린하고 조롱해왔다는 증언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삼성이 먹여 살려온 것은 한국이 아니라 타락한 공직자들이라고 낱낱이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온갖 질환에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건만, 진상규명과 보상은커녕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는 현실은 그냥 가능한 것이 아니구나 싶다. 참 아프고 화가 난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딱 한번 크게 웃은 적이 있다. 터지는 웃음을 참을 재간이 없었다. 바로 이 구절에서다.
"삼성 냉장고의 월간 판매실적이 LG에 뒤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건희는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남은 이익을 한 2조원 쯤 에어컨이나 냉장고 등 냉공조 사업부에 돌려서 우리나라 전 가정에 삼성 에어컨과 냉장고를 공짜로 줘서 LG가 망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149쪽)

다행히도 이건희씨의 지시는 실현되지 않았다고 한다. 삼성 안에서도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없지 않다는 증거다. 그런데 해마다 '대학생이 존경하는 기업인' 1위를 놓치지 않는 이건희씨가 정말 저런 지시를 내렸을까?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막중한 임무수행을 위해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대통령 이명박씨의 특별사면을 단독으로 받은 이건희씨가 정말?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저 정도면 '허본좌'에 필적할 만한 '이본좌'의 탄생이 아닌가. 한국의 대학생들은 '일류기업'의 총수 이건희씨가 아니라 '이본좌'를 존경해왔단 말인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또 어찌 될 것인가?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IOC위원들의 출신국 국민들에게 삼성 에어컨 하나씩 공짜로 주겠다는 이색(?) 제안도 전혀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과연 나뿐일까?

생각해보면, 이명박씨와 이건희씨, 허경영씨에게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무척 끔찍하다는 것이다. 너무 끔찍해서 서슴없이 황당한 약속을 내건다. 이명박씨는 국민에게 '747'을 약속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7% 경제성장, 4만불 소득, 7대 경제강국 진입'이라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찌릿찌릿해지는 공약이었다. 하지만 집권 2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이명박씨의 약속과는 꽤나 거리가 멀다. 민주당 대표 정세균씨는 대통령 이명박씨의 '747'이 '447'(4백만 실업, 4백조 국가부채, 7백조 가계부채)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또 이건희씨가 전 가정에 삼성 에어컨과 냉장고를 공짜로 주라고 지시했다는 것도 다 국민을 위한 마음이 끔찍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진심으로. 경쟁기업이 망하도록 그런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일류기업'의 경영 노하우가 아니라 넌센스의 영역이지 않은가.
한편 허경영씨는 상식은 물론, 상상조차 뛰어넘는 '허본좌'의 언행을 보이며 국민에게 웃음보따리를 안겨주고 있다.
반면에 위 세 분에게는 차이점도 하나 있다. 허경영씨의 행보는 황당할수록 우리를 웃겨주지만, 이명박씨와 이건희씨의 황당한 언행은 우리를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실적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다.

이후 내용은 자진 삭제하였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