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블로그 이름

블로그 이름을 바꿨다. 예전에 홈페이지 운영할 때부터 communi21은 나의 아이디이면서 홈페이지 이름이었다. 어쩌다 이름을 바꿔볼까 고심했던 적도 있긴 했다만, 귀찮아서 그만 두곤 했다. 블로그로 옮겨오면서 communi21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communi21의 유래(?)를 살짝 소개하자면 이렇다. 1999년 복학한 나를 선배 A가 컴퓨터 앞에 앉혔다. 나에게 이메일을 만들어준다고 하였다. 그딴 거 만들어서 어디다 써먹냐고 속으로만 튕기고 고분고분 앉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의 컴퓨터활용능력은 독수리 타법에 윈도우가 뭔지도 모르는 완전 컴맹 수준. 여하간 전혀 이메일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나에게 A 형은 아이디를 뭘로 하겠냐고 물었다. 대충 아무거나 하라고 했더니, A 형은 이름처럼 중요한 거라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글믄 communi로 하쇼."
"communi? 오~ 그럴싸 한데."
A 형은 c.o.m.m.u.n.i를 하나씩 타이핑했고, 나의 첫 아이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때 만든 이메일계정은 한겨레가 서비스하다가 접었던 하니메일(hanimail.com)이다.
그 후 '21'이라는 접미사가 따라붙게 되는데, 그 배경은 이렇다. 당시 21세기를 눈앞에 둔 전도유망한 언론학도였던 나는 한겨레를 좋아했다. 한겨레21, 씨네21 같은 주간지도 즐겨 읽는 독자로서, 한겨레에서 '21' 시리즈로 작명하는 것에 적극 호응한 것이다. 다른 포털사이트 같은 곳에서 communi가 이미 사용중인 아이디라서 등록되지 않았다는 건 부차적인 이유이고.
그렇다면 내가 왜 처음에 communi라고 정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감히 믿어 의심치 못하겠다. 놀랍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communi를 'communism'이나 'commune'에서 따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간혹 communi를 '꼬맹이'라고 생각하는 몰상식한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좌빨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communi는 'communication'에서 가져온 거다. 신문방송학과를 영어로 대충 'department of communications'라고 한다는 게 떠올랐을 뿐이고, 신방과를 다니고 있었으니까 아이디를 까먹진 않을 것 같았을 뿐이고. 여하간 내 아이디에서 communism이라는 불온한 사상을 떠올려준 사람들에겐 그저 감사할 뿐이다. ㅋ

지금까지 communi21이라는 아이디를 귀차니즘 탓에 그대로 블로그 이름으로도 사용해왔다. 이제 새로운 이름으로 새출발을 선언..............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한번 바꿔봤다. 모르는 일이다. 어느날 갑자기 예전으로 돌아갈지도.

블로그의 새로운 이름은 ANARRES(아나레스)다. 흠. 뭔가 있어보이지 않나? 나만 그런가?
아나레스는 어슐러 르귄의 소설 <빼앗긴 자들>에 나오는 쌍둥이 행성 중 하나의 이름이다. 다른 하나의 이름은 우라스(URRAS). 아나레스는 풍족하지 않지만 사적 소유와 권력, 착취, 차별이 없는 곳이고, 우라스는 모든 것을 사적 소유하고 부유하며 풍족하지만 권력과 지배가 있고 계급으로 나뉜 사회다.

"아니. 근사하지 않아요. 아나레스는 못난 세계요. 여기 같지 않지. 아나레스는 온통 먼지투성이에 메마른 언덕 뿐이오. .... 궁전 같은 건 없지. 삶은 단조롭고 힘든 일 투성이요. 항상 원하는 것을 가질 수도 없고, 심지어는 꼭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없을 때도 있지. 충분하지 않으니까. ... 당신(우라스 인)들은 부유하고 소유하고 있소. 우리(아나레스 인)는 가난하고 결핍되어 있지. 당신네는 가졌고, 우리는 가지지 못했소. 여긴 모든 게 아름답지. 얼굴들만 빼고. 아나레스에는 아무것도 아름다운 게 없어. 얼굴들을 빼면. ... 여기 당신들은 보석을 보지만 거기서는 눈동자를 봐요. 그리고 그 눈 속에서 장려함을, 인간 영혼의 장려함을 보는 거요. 우리의 남자와 여자들은 자유롭기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자유롭소. 그리고 당신들 소유자들은 소유당하지. 모두들 감옥 속에 있어. ..."

"이 100하고도 50년간 당신네 사회(아나레스)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아시오? 여기 사람(우라스의 소외계층)들은 서로에게 행운을 빌 때 '아나레스에서 다시 태어나길!'이라고 말한다는 거 아시오? 그게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 정부도 없고, 경찰도 없고, 경제적 착취도 없는 사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그냥 환상이나 이상주의자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떤 것인지!..."

<빼앗긴 자들>은 유토피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SF소설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니지만 자유와 평등을 실현한 아나레스. 물론 아나레스는 완벽한 유토피아는 아니다. 열악한 자연환경 탓에 먹는 것조차 충분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아무도 남이 먹을 때 굶지는 않'는 사회다.
유토피아가 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에 꿈꾸는 게 아니다. 어떤 세상도 완전할 수 없다. 유토피아는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