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은 권리 없는 선택 : '롱패딩 후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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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은 권리 없는 선택 : '롱패딩 후원 논란'

한 복지재단을 통해 매월 일정금액을 한 아이에게 후원하는 직장인이 올린 글 때문에 '롱패딩 후원 논란'이란 게 벌어졌다. 전말은 이렇다. 본인이 후원하던 아이를 위해 롱패딩을 사주겠다고 하자, 아이는 아이돌그룹이 광고모델로 나오는 브랜드 롱패딩(20만원이 넘는다는)을 사달라고 했다. 후원받는 아이의 신상보호를 위해 모든 연락은 재단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아이의 반응에 후원자는 '기분이 상했다'고 하고, "날 후원자가 아닌 물주로 생각했다는 감정이 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후원하는 아동이 피아노도 배운다. 형편이 어렵지 않은 것 같다"고도 했다.

후원은 좋은 실천이고 절실한 누군가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후원자는 후원받는 이가 행여나 상처 받지 않도록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후원받는 이는 후원자에게 감사함이라는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도록 강요당하거나 '불쌍한 존재'(수많은 복지재단이나 구호단체들의 홍보물에서 볼 수 있는 '빈곤 포르노그라피'처럼!)로 각인되어서는 안된다. 후원이 자발적인 선택이듯이, 감사함도 스스로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후원이란 '뒤에서 도와줌'이란 뜻이다. 후원자는 도와주는 사람이지, 후원받는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거나 판단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자존감과 존엄성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사실은 후원자와 후원받는 사람 사이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후원하고 있는 누군가가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할 수는 있다. 후원받는 사람이 어리다면 어떤 식으로 사는 게 좋은 것인지 참견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원자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만 일어나야 할 일이다. 내가 후원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지는 오직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할 일이다.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권리이자 자기 존엄의 밑바탕이다.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롱패딩을 입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까. 조금 비싼 롱패딩을 갖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후원자의 마음을 상하게 할 정도였을까. 좋은 옷을 입고 싶고 유행하는 옷을 갖고 싶은 것은 부자 아이나 가난한 아이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런 욕망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판단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 아이는 또래들과 차이 나는 롱패딩을 입을 바에는 차라리 안 입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비교당하는 것보다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안되는 것이 나으니까. 그리고 가난한 아이는 피아노를 배우면 안되는가? 고액 개인레슨을 받을 리도 없고, 형편이 어렵지만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은 아이한테 참 좋은 일이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가난해야 후원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일까.

그 후원자는 좋은 사람일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매월 자신의 소득에서 일정 금액을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위하여 내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타인의 고통에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고통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착한 마음이 누군가에 대하여 어떠한 권리를 갖게 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내가 후원하는 대상이 내가 상상하는대로 불쌍한 상태여야 한다고 할 수도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 후원이란 대상에게 어떠한 권리나 보상을 생각하지 않는 자발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후원은 다르다. 적극적으로 후원자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그가 후원을 중단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만의 권리이므로. 그런데 그는 아이가 '자신을 물주로 생각했다'며 '기분이 상했다'고 하지만, 스스로 '물주'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내가 낸 돈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이니, 나의 상상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후원자보다는 '물주'에게 더 어울릴테니까.


사족.

나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잡지를 후원하고 있다. 좋은 잡지를 더 많은 아이들이 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매달 내는 후원금으로 전국 어느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고래가 그랬어'를 받아볼 수 있다. "부잣집 아이 중에 고래 못 보는 아이는 있어도 가난한 집 아이 중에 고래 못 보는 아이는 없게 하자"는 취지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와 같은 후원자들을 '고래동무'라고 부른다. '고래가 그랬어' 홈페이지에 소개된 고래동무의 속깊은 뜻을 옮겨둔다. 혹시 마음이 움직이신 분은 함께 하시길.

"고래동무는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적선운동이 아닙니다. 고래동무는 아이들이 당연히 누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회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속 깊은 연대입니다."


고래가 그랬어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