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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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표 원칙

나는 투표가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민은 오직 투표할 때에만 자유롭고 투표를 마치고 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는 루소의 말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투표할 때에도 우리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투표권이 있는 한 거의 투표를 했다. 어찌되었든 투표는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긴 하니까. 그 영향력이란 것이 당선과 함께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라 하더라도. 딱 한번 기권을 한 적이 있다. 기권과 무효표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결국 기권을 선택했다.

징역살이 하면서 처음 진보정당에 관심을 가졌고, 엄마 아빠의 아들이라는 사실보다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더 자랑스러워 했던 시절도 있었다. 민주노동당 당원 사진동호회 운영위원도 맡고, 최초로 당선된 당 비례대표 광역의원의 의정지원 보좌관까지 직업으로 삼았다. 몇년 후 민주노동당은 정파적 내분으로 쪼개졌고, 이런 저런 사태를 지나며 지금은 정의당과 민중당, 노동당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중이다.

현재 내가 지지하는 정당은 정의당이다. 민주노동당 당원 시절처럼 뜨겁지는 않다. 정의당이 나를 매혹시키지 못한 탓인지, 내가 나이 들어가는 소시민이 되었기 때문인 것인지는 잘 모른다. 뜨거웠던 시절에는 여기저기 토론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설명하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비판했다. 특히 '비판적 지지'라는 망령은 극혐하며 이제는 진보정당을 키워야 한다고 '피를 토하며'까지는 아니고, 떠들어댔다.

나는 지금 그런 열정도, 지식도 없다. 그나마 잊지 않고 있는 원칙은 '진보정당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진보정당의 집권을 원한다.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원내진출을 했을 때 그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한다. 제대하던 날 아침보다 더 감격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에게 정치는 삶의 활력이고 원동력이었다.

나는 이제 보수화되었다. 정의당에 투표한다고 해서 내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당을 지지하고, 노동당을 '비판적 지지'하며, 노동당마저 없으면 민중당. 대충 이런 식이다. 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더 보수화될 것이다. 그래도 정치는 나에게 중요하다. 정치는 내 삶을 나아지게 할 수도, 더 힘들어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자치구의 비례대표 기초의원은 무투표 당선이라서 투표용지가 6장 뿐이다. 무투표 당선이라니 이건 좀 반민주적이다. 찬반투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투표'에 대한 나의 글

민중당 후보의 선거공보물 뒷면을 이석기씨가 차지한 것은 뜬금없다.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슬로건으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관철시키려 했던 것처럼 뜬금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