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

    '수리'

    철학하는 사람 k는 이렇게 말했다. 반복되지 않는 행동을 일러 용서할 수 있는 '실수'라고 하는데, 반복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고장난 기계를 '용서'하지 않고 '수리'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이 실수의 뜻이다. 관계에서 일어나는 실수는 대개 안타까운 것들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한 마음과 신중한 고민 끝에 행동했더라도 상대방에게는 악행이거나 성급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는 언제 어디서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순간 어긋나버리는 것은 일도 아닌 무시무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중한 관계일수록 배려의 긴장 속에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실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한다. k의 말마따나 ..

    적당히 살자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안입고 안먹고 악착같이 돈 모으고 대출받아서 아파트 한채 샀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글 아래에 이러쿵 저러쿵 댓글들이 올라왔는데 먼저 대표적인 댓글들을 보자. ●아직도 집 장만에 목숨 거는 젊은이들이 많은것 같네요. 대출까지 무리하게 받아가며 그럴 필요 있을까요? 전세 살면 어떻습니까? 삶을 좀 여유롭게 즐기면서 살아보세요. ●양도 차익도 별로 없을테니 빨리 처분하시고 그냥 전세사세요... 언젠가는 전세가 밑으로 집값이 떨어질 날 올 것입니다. ●글쓰신분 대단하세요,,성공하실겁니다..세상의 모든 와이프들을 응원합니다. ●집이 우선이 되는 이 사회가 싫긴하지만 어쩔수 없죠..이게 현실이니..^^; 암튼 고생했습니다. 집 장만하셨으니 앞으로는 약간은 누리(?)면서 사세요. 아 ~ 근데..

    노땡큐

    나는 가끔 A선배와 소주 한잔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나 나나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다. 특히 A선배는 1분 이상 말을 지속하지 않을 정도로 '과묵'하다. 둘 사이에 화수분처럼 이야기 소재가 무궁무진한 것도 아니다. 둘이 공감할 만한 소재라고는 한때 음악 매니아였던 A선배에게 라디오헤드가 어떻고, 그린데이가 어떻고, 니르바나가 어떻고 하는 것 뿐이다. 그것도 깊이 있는 음악평론은 꿈도 못 꾸고, 그냥 아는 곡 이름이나 들이대고, 커트코베인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다. 정리하면 술자리에서 떠들썩하거나 종종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 따위는 거의 기대하지 않는. 뭐 그런 '썰렁한'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A선배에게 '소주나 한잔 합시다'라고 전화한다. A선배에게는..

    끓는 점

    물은 100°C에서 끓는다. 10°C에서부터 열을 가하여 80°C가 되었다고 해서 물은 끓지 않는다. 80°C에서부터 열을 가하여 99°C가 되었다고 해도 물은 끓지 않는다. 임계치다. 임계치를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 '변화'는 없다. 아무리 열심히 열을 가했다 하더라도 끓는 점을 넘어서지 못하면 물은 끓지 않는다. 50°C가 부족했든 1°C가 부족했든 상관이 없다. 그냥 물은 끓지 않은 것이다.

    씨발, 15년 걸렸네

    부모가 시키는대로(원하는대로), 학교가 지시하는대로 살아왔던 시기는 제외하고. 내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때로부터, '한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다시 '하고 싶은 것을 행복하게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결론으로 수정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젠장, 이게 또 수정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행복하게 하고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일(대부분 안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들을 묵묵히 감수하며 해내는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여기까지 다시 1년이 걸렸다. 빌어먹을! 고작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결론을 내려고 1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보내야 했단 말인가. 씨발! 내가 무슨 오대수냐, 15년이라니! 라고 한탄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