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눈물

    어진간한 신파 멜로에 눈물을 빼진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 TV 드라마를 보다가 엉엉 운 적이 있다. 수년간 잃어버렸던 자식들을 찾은 엄마가 아주 오열을 하는 그런 장면인데, 지금도 생생하다. 드라마가 워낙 최루성이기도 했으나, 결정적으로 옆에서 엄마가 운 것이 컸다. 엄마가 TV 보다가 우니까 어린 나도 울었다. 그 이후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운 일은 거의 없다. 좀 어이없게도 영화 를 보고 펑펑 울긴 했다. 이성재랑 고소영이랑 나오는 영화인데, 어렵게 기적처럼 임신한 아이가 무뇌증에 걸려 태어난지 하루 안에 죽는다는 걸 알고도 낳는다는 좀 뻔한 신파다. 신생아실 유리벽을 사이로 곧 죽을 아이를 보며 웃음 짓지만 얼굴은 눈물 범벅인 이성재와 고소영. 나도 같이 울었다. 씨바. 그 뒤로는 그렇게까지 눈..

    접속

    누구나 '내 인생의 영화'라 할만 한 영화들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기준이란 게 고무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 목록이 조금 긴 편이다. 그래도 상위에 자리를 잡은 영화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긴 하다. 그 중 한 편이 영화 이다. 은 1997년에 개봉했지만,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오른 것은 몇년 되지 않았다. 을 세번째 보았다. 이번엔 사운드트랙이 귀에 팍팍 꽂혔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잘 몰라서, 'Pale Blue Eyes'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엔딩에 나오는 'A Lover's Concerto'를 훨씬 더 좋아했더랬다. 97년 당시 PC통신을 소재로 한 멜로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신선한 접근이었다. 10년 하고도 2년이..

    <구타유발자들>-폭력은 정치적이다

    영화 은 재미있는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영화다. 나에겐 제목부터 불편했다. '구타유발'이라는 말은 오로지 가해자의 관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때릴만 하니까 때린다'라는 식의 논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의 폭력은 피해자의 책임이라는 어이없는 논리.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맞을만한 이유를 제공한 '구타유발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구타와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이쯤되면 관객은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가 없다. 상영시간 내내 불편함에 몸을 뒤척이며 영화의 결말을 기다릴 수 밖에. 영화는 폭력의 원시성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건은 인적 없는 산골의 냇가에서 벌어진다. '구타유발자들'은 평평한 돌덩이 위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시골 양아치들의 보스 봉연(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