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

    교양 없는 사회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하려는 상황에서 한국과 영국의 비교 (과학적 연구결과는 절대 아니지만, 갔다와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의할 만큼 사실성이 농후함) 공통점 ☞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 눈치를 살핀다. 차이점 영국 ☞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는 망설임 없이 도로를 건너간다. 한국 ☞ 운전자는 속도를 유지하고(간혹 속도를 더 높이고), 보행자는 자동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물론 영국에도 과속하거나 보행자 개무시하는 운전자가 있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이고. 한국에서는 보행자 개무시가 보편적이고, 보행자 우선이 예외적인 경우라는 거. 약자일 때 배려나 보호를 받기는커녕 개무시 당하니까, 강자가 되기 위해 살벌하게 경쟁하면서 피로에 쩔어서 사는 사회. 그리하여 약자나 강자나 더불어 불행한 사회...

    중도

    2007년 2월 1일 대화는 맥락적이다. 같은 현상이나 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맥락에 따라서 전혀 다른 대화가 가능하다. 정해진 것은 없다. 이것을 폼 잡고 말하면, '중도(中道)'라고 한다. 중도는 기계적인 중립이 결코 아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원하는 목적에 다다를 수 있는 최선의 길, 그것이 중도이다. 오로지 그 상황에 맞는 최선의 길. 그래서 정함이 없는 길이다. 인간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정할 수 있을까?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 천국은 관념적인 기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이다. 우리 삶 속에서 관계를 실천하는 수많은 방식. 산다는 것은 그것들을 배우고 실험하고 개선해가는 과정.

    어른

    2007년 7월 21일 얼마나 좋을까? 딱 마음 먹은 만큼 일이 이뤄진다면. 하지만 세상만사 어찌 그리 되나. 이런 생각도 든다. 마음 먹은 만큼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마음'에 성실했는지 먼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렇게 하면 어른이 될 것 같다. 마음 먹은 만큼 일이 되지 않더라도, 좌절보다는 그 '마음'의 진심을 잃지 않는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늘 기쁜 가운데 아득한 슬픔 떨쳐지지 않는다. 슬픔은 슬프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기쁨이 두렵기 때문에 슬픔을 놓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탄재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2008년 2월 9일 자전거 타고 혼자 쏘다니다가 어느 들판에서 찍었다. 연탄재를 저렇게 짓뭉개버린 것을 보니, 그 사람은 여러 사람에게 수없이 뜨거운 사람이었나 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단 한번도 뜨거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많은 사람에게 한결같이 뜨거운 사람이나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사실. 어차피 외로운 사람. 정호승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연탄처럼 한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행복할까? 자신의 몸을 태운 연탄은 재가 되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잊혀지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공중전화

    2005년 11월 10일 공중전화. 군대 시절, 공중전화 앞에서 몇 십분 동안 줄 선 수고 끝에,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떨렸던가. 별로 나눈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전화카드의 잔액은 왜 그렇게 뚝뚝 떨어졌는지. 휴가 첫날, 부대를 나서자마자 공중전화를 찾아 아는 이들에게 '휴가 나왔다'며 신나게 떠들기도 했다. 휴가 마지막날, 부대 복귀 직전에도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 착잡함이란! 제대 이후로 공중전화에 대한 애틋함은 기억나지 않는다. 지갑 속에서 전화카드는 사라지고, 우리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졌다. 언제 어디서든 바로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는 편리함과 신속함은 공중전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요즘엔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신용카드를 대신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