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입니다
opinion

덕분입니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베란다로 나가서 바깥 상황을 살폈다. 아 많이도 쌓였다. 이른 새벽부터 경비 아저씨가 수고하신 덕분에 이미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다. 모르고(또는 모른척) 살아서 그렇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덕을 우리는 보고 산다. 경비 아저씨들에게 머슴 부리 듯 갑질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관리비 몇천원 늘어나는 게 아까워서 남의 생계를 끊는 일도 서슴지 않는 그런 세상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긴 하다만. 최저임금이란 게 노동을 시키고 이 돈보다 더 적게 주면 안된다는 취지인데, 어떤 사람들은 노동 시키고 이 돈만 줘도 된다고 받아들인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노동자를 자기 먹고 살려고 돈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쉽게 생각해버린다. 그러니까 다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거니까, 감사할 까닭도 없고 어떤 연대감도 가질 필요도 없다. 뭐 이런 식이 되어버린다. '덕분입니다' 뭐 이런 생각으로 노동자를 대하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 사회는 '노동을 말하지 않는 사회'(나의 글)이니까.

2003년인가 서울에서 신문사 다닐 때, 강남교보문고에서 열린 故 신영복 선생님 강연회에서 들은 이야기다. 우크라이나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젊은이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을 보고 신기해서 물어보았다고 한다. 장유유서, 노인공경 같은 도덕은 동양문화권에서 익숙한 것이니까. 그 젊은이는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 노인세대가 이 지하철을 건설한 노동자이니까 양보하는 건 당연하다." 단순히 노인공경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이었던 거다.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와서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들은 이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자기들 돈 벌려고 일한건데 그게 존경할 일인가요?"

우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 덕분에 생활을 유지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나의 노동으로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노동자이면서 소비자이고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조금씩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돈이 중심이 되는 사고에 균열이 생기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느리게나마 복원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