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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필순

    시사인 이번 호에 장필순 인터뷰가 실렸다. 가수보다는 '뮤지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 무슨 몇단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지도 않고 옥구슬 굴러가는 미성도 아니다. 오히려 허스키한 음색 때문에 어렸을 때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가끔 마음을 흔들고 끝내 눈시울을 뜨겁게 달궈놓기도 한다. 그는 노래 잘하는 가수는 아닐지 몰라도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소리 없이 차곡차곡 보여주는 뮤지션이라는 건 확실하다. 조만간 8집 정규앨범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새 앨범이 기대되는 까닭은 바로 저 한 문장 때문이다. '더 단순해졌다' 복잡한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단순해지는 거다. 어떤 작업도 그렇고, 나의 마음도 그러하고, 어떤 이와의 관계도 그렇고, 그래서 인생사가 ..

    소심한 보복

    아침에 씻고 나와서 뉴스를 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SAMSUNG'. 아 재수 없어 하고 테이프를 뜯어서 발라버렸다. 내가 가진 물건 중 유일한 삼성 제품인 스마트TV. 물론 삼성 물건 안사려고 애쓴지 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중고로 TV 사는데 싼 가격에 딱 필요한 기능만 있는. 가진 게 없으면 가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깐. '무노조 경영' 하나만으로도 더러운 기업이구나 했는데, 삼성반도체 노동자들 백혈병에 걸려 죽어갈 때 산재신청조차 가로막고 돈으로 입막음하려 한 또 하나의 가'족같은' 기업 물건 따위 안사야지 했다. 그러다가 삼성 비자금 & 뇌물 사건 터졌을 때부터는 거의 본능처럼 '삼성' 이름 들어간 건 일단 거부감부터. 10년도 더 전에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의 대형 ..

    에라이 씨발

    씨발놈들.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 건재하다. 삼성. 정권은 바뀌어도 삼성은 영원하다.과연 대법원에 희망이란 걸 기대해도 될까. 2017년 8월 1심 선고공판에서 이재용이 실형 5년을 받았을 때 한 신문기사의 제목은 "삼성공화국은 막을 내렸나"였다. 삼성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었던 기억인데, 삼성공화국은 막을 내린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통령 탄핵까지 이끌어낸 우리의 광장은 삼성 앞에서는 턱없이 좁아지고 만다.삼성을 씹었던 글들을 다시 곱씹으며 씨발씨발해야겠다.

    빵과 귤

    아빠가 좋아하는 빵 사러 퇴근길에 빵집에 들렀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는 볼 수 없는 비주얼. 인스타그램에는 등장하기 힘든 빵이다. 희귀성 때문에 누군가는 찍어 올릴지도 모르겠다만. '아직도 이런 빵집이 있네요'하고 올리지도. 여기 빵은 과하지 않은 맛이 참 좋다. 유명한 개인 빵집에서 맛볼 수 있는 폭식폭신하고 촉촉한 식감은 아니지만. '빵에 무슨 짓을 한거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맛있고 싸고 좋다. 무엇보다 '써비스'가 좋다. 부모님 드릴 거랑 내가 따로 가져갈 거 바구니 넘치게 담아서 드렸더니, "선물할거요? "아니요. 부모님 드릴거에요." 비닐봉투 2개에 나눠 담으시더니 '써비스'로 빵을 막 넣어주신다. 어림잡아 8개는 공짜로 더 주신 듯. 빵 개수도 세다가 포기하셨나. 그냥 2만원만 주라고 하신다..

    강용주의 싸움을 지지합니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동신고등학교 3학년. 어머니의 울음을 뒤로 하고 항쟁 마지막날 도청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가 닥쳐오자 도망치고 만다. 그후 의대생이 되었고 학생운동에 나선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감옥 안에서 온갖 협박과 고문에도 준법서약서에 무인을 찍지 않고 버티다가 1999년 삼일절 특사로 출소한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국가는 보안관찰이라는 이름으로 3개월마다 경찰서에 무슨 일을 했는지 신고하도록 했다. 인권침해이고 이중처벌이다. 그는 '하지 않을 자유'를 위하여 다시 투쟁을 선택한다.그의 이름은 강용주, 이른바 '최연소 장기수'다. 그리고 2003년 전향제도와 준법서약서는 폐지되었다.양심과 사상의 자유. 한국의 헌법을 온전히 실현..